고대 이집트 종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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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첫 번째 무덤은 직사각형의 벽돌로 지은 파라오나 귀족들을 위한 석실분묘이다. 각각의 석실분묘는 지하의 시신 안치실과 지상의 예배당으로 분리되었다. 고왕국의 석실분묘는 이집트 창조신화에 나오는 언덕을 상징하는 [[피라미드]]로 발전하였다. 피라미드들은 왕족들에게 제한되었으며, 거대한 시체 안치소를 포함하였다. 중왕국의 파라오들도 고왕국의 피라미드들보단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를 지었지만, 석실 분묘의 대중성에 피라미드 건축 의지는 시들어 갔다. 점점 더 많은 평민이 시체안치소와 예배당이 분리된 바위를 파서 만든 석실에 매장됨에 따라 도굴하기에 더욱 어려워졌다. 신왕국이 시작함에 따라 파라오들도 그와 같은 무덤들에 매장되었고 이집트 종교가 쇠퇴하기 전까지 이와 같은 장례의식은 계속되었다<ref>Taylor, pp. 141–155</ref>.
 
[[파일:CatMummies-ROM.png|thumb|80px220px|[[고양이]] 미라]]
시신은 다양한 시신이 훼손될 경우를 대비한 죽은 자의 조각상<ref>Fleming and Lothian (1997), pp. 100–101</ref>과 미라화 과정에서 시신에서 빼낸 내장을 담은 항아리들<ref>Quirke and Spencer, p. 92</ref>을 포함한 제물들과 함께 무덤에 묻혔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후세계에서도 일해야만 했는데 조각상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일을 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이 조각상들은 초기 파라오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ref>Taylor (2001), pp. 99–103</ref>. 부유한 자들의 무덤들은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비싼 가구들과 옷들을 포함하여 영혼의 세계로 가는 길을 지켜줄 마술이 깃든 귀금속을 같이 매장하였다<ref>Taylor (2001), pp. 107–110, 200–213</ref>. 더 나아가서 무덤의 벽화나 수의, 아마포, 파피루스 등에 새겨진 장례문헌을 통하여 사후세계에 안전히 도착하기를 기원하였다<ref>Quirke and Spencer (1992), pp. 97–98</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