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1세 (벨기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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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에서 [[벨기에의 레오폴 2세|레오폴 2세]] 국왕의 조카이자 [[필리프 드 플랑드르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9년]]에 왕좌에 오른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벨기에 [[육군]]을 강화시키는 일을 하였으며, [[1913년]] 징병제 제안의 찬성을 얻었다. [[1914년]] [[여름]]에는 [[독일]]과 [[프랑스]]에 벨기에의 중립을 다시 단언하였고, [[8월 2일]]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최후 통첩을 거절하여 벨기에 영토를 지나는 독일군의 무임 승찬을 요구하였다. 이틀후에 독일군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알베르는 벨기에군의 지도력을 맡았으나, [[10월]]에 일어난 [[안트베르펜]]의 함락 후에 이세르 강으로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나서 독일군은 플랑드르 남서부를 제외한 벨기에 전역을 차지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에 알베르는 그의 군사와 함께 남아있었고, 드판(De Panne)에 있는 그의 본부들로부터의 참호를 계속 방문하였다. [[1918년]] [[9월]]에 [[연합국 (제1차 세계 대전)|연합국]]의 공세가 일어나자, 프랑스-벨기에의 북군의 사령관을 지내면서, [[오스탕드오스텐더]]와 [[브뤼헤]]를 포획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다음 15년 동안 국가의 재건에 힘쓰면서 독일군에 의하여 파괴된 산업의 재발달과 공공지역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1926년]]에는 새로운 군주 제도를 도입하는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