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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3-11-25}}
[[파일:Gavrilloprincip.jpg|thumb|250px|형무소에서에서 찍은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사진]]
'''가브릴로 프린치프'''({{llang|bs|Gavrilo Princip}}, {{llang|sr|Гаврило Принцип}}, [[1894년]] [[7월 25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오블랴이(Obljaj) ~ [[1918년]] [[4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현재의 [[체코]]) [[테레진]])는 [[남슬라브]] 통일을 목표로 삼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 초기 생애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보산스코그라호보]] 인근에 위치한 오블랴이 마을마을에서 출신이다페타르 프린치프(Petar Princip)와 마리야 프린치프(Marija Princip, 결혼 이전의 성(姓)은 미치치(Mićić))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린치프에게는 9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6명이 유아 시절에 병으로 사망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세르비아 정교회]] 주교는 병약한 아이가 자라는데성장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대천사 가브리엘]]에서 이름을 딴 "가브릴로"(Gavrilo)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프린치프의 부모는 [[무슬림]] 대지주 밑에서 일하던 빈농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였던 페타르(Petar)는페타르는 청년 시절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봉기에 가담했지만 봉기 이후의 삶이 어려워지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마을에서[[보스니아]] 북서부에서 [[달마티아]]로 물자를 수송하는 업무에업무를 종사하게수행하게 된다.
 
[[1903년]]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낸 프린치프는 교장으로부터 세르비아어 서사시를 선물로 받았다. 13세 시절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관학교로 입학시키려는 형 요반(Jovan)의 요구에 따라 사라예보로 이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요반은 동생을 사관학교로 입학시키려던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상업학교에 입학했다. 요반은 삼림 벌채 공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동생의 수업료를 지불했다.
흑수단 대원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추정상속인]]이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과 그의 아내인 [[조피 초테크 폰 호엔베르크 여공작]]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914년 6월 28일에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군사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프린치프의 동료였던 [[네델코 차브리노비치]]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타고 있던 차량에 [[수류탄]]을 던졌는데 차량 밑에 떨어진 수류탄이 터지면서 16명이 중상을 입었다. 차브리노비치가 수류탄을 던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린치프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권총으로 저격하여 암살했다. 프린치프는 사이안화물 성분이 들어간 캡슐을 삼키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불량품이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뒤를 이어 권총 자살을 시도했지만 발포하기 직전에 군중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국은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세르비아 당국에 세르비아 영토 내에서 사건의 수사를 하게 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담긴 통첩을 보냈다. 세르비아는 요구를 대부분 수락한다고 밝혔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