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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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할 즈음에,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장군 신덕(申德), 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 균로사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鈞), 공부경(工部卿) 대복예(大福譽),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 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 검교(檢校) 개국남(開國男) 박어(朴漁), 공부경(工部卿) 오흥(吳興)이 그 남은 사람을 거느리고 수만 호가 도망하여 고려로 귀부하였다.
[[태조 왕건]](太祖 王建)은 후하게 대접하여, 대광현에게 [[개성 왕씨|왕씨]] 성과 계(繼)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종적(宗籍)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 또, [[원보]](元甫)의 벼슬을 받아 [[백주]](白州)를 지키면서 집안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협계 태씨]], [[영순 태씨]]의 족보에서는 [[고려 태조|태조]]가 그에게 태씨(太氏) 성을 하사했다고 전한다. [[남원 태씨]], [[나주 태씨]], [[밀양 태씨]] 모두 그에게서 분파된 후손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