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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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아니한다고 [[곽상훈]](郭尙勳)·[[김두백]]을 유치장에 구금한 일도 있었으나, 이들 증인 중에는 어학회 사업을 운조, 협력한 저명한 문화인들도 많았다. 함흥 검사국에서는 범위 축소 지시에 따름인지 모르나, 어학회 관계자를 다시 조사하여 대부분은 석방하고, 이윤재·한징·최현배·이희승·정태진·이고루·김양수·김도현·이중화·김법린·이인·정현식 13명만 공판에 회부하였다.
[[1943년]]
그러나 원고는 광복후 1945년 9월 서울역 창고에서 일제가 잃어버린 원고가 발견되어 추후 한글 대사전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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