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가멜라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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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군대의 규모에 대해서는 고대의 기록과 현대의 연구자들의 추정치가 서로 다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병력 기록은 동시대인인이자 직접 참전한 프톨레미아오스의 기록에 의하기 때문에 비교적 공정하고 정확하다고 할 수 있으나 페르시아 병력의 경우 고대의 기록이 훨씬 과장되어있을 가능성이 많다.
 
고대의 페르시아 병력에 대한 기술은 기병 40,000~200,000, 보병 800,000~ 1,000,000으로 총병력이 100만을 상회하지만 이는 당시의 인구 통계나 자료로 비추어 타당하지 않다. 현대의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페르시아군의 경우 전차 200대, 경보병 62,000명, 그리스 [[중장보병]] 2,000명, 기병 12,000, 전투 코끼리 15마리 등으로 총 90,000~100,000 정도의 병력이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에 맞서 마케도니아 측은 경보병 9,000명, 중장보병 31,000명, 기병 7,000으로 전차도 없이 수적으로 훨씬매우 열세였으나 장비와 훈련정도는 페르시아를 압도했을 것으로 본다.
 
양쪽 군대가 평원에 맞서 진을 펼치고 맞선 전투 전날밤, 페르시아군은 진지에서 밤새 무장한 채로 서있었으나 알렉산드로스군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식량도 충분히 지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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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ttle_of_Gaugamela,_331_BC_-_Opening_movements.gif|thumb|250px|left|가우가멜라 전투의 시작]]
=== 진영 배치 ===
다리우스는 동방과 동맹 [[스키타이]] 부족들에게서 우수한 기병을 모으고 [[전차 (고대 무기)|전차]] 200대와 [[인도]]의 [[전투 코끼리]] 15마리도 포진시켰는데 사실 전투 코끼리는 전투에서기원전 1100년 [[철기 시대]]가 도래한 이후부터는 그 어떤 전투에서도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는다리우스는 전차의 원할한 기동을 위하여 평원의 잡목과 풀들을 모두 베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다리우스 자신은 최정예 보병대와 전통적으로 페르시아 군주들과 함께 좌우로 기병과 그리스 용병의 호위를 받으며 중앙에 포진했다. 진영 중앙에는 보병대와 [[불사부대]], 궁수를 배치했고 전체 부대의 좌익과 우익에는 각각 기병을 포진하고 전차를 기병대의 선두로 좌우에 배치했다.
 
마케도니아 군은 중앙에 [[팔랑크스]], 중장보병을 중심으로 두고 좌우익에 기병을 배치했는데 오른쪽에는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직접 최정예 [[컴패니온 기병대]]와 파이오니아, 마케도니아 경기병을 지휘하고 왼쪽날개에는 [[파르메니온]]이 [[테살리아]]와 그리스 용병, [[트라키아]] 기병대를 지휘했다. 중앙의 팔랑크스는 이중으로 배치하였는데 이는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 대항하여 좌우익의 균열이 생길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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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는 이 전투에서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하였다. 그의 계획은 페르시아 기병대를 최대한 좌우 날개쪽으로 끌어들여서 적진의 틈을 만들고 그 생긴 틈으로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여 다리우스의 본진으로 침투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타이밍과 기동을 요하는 전술이었고 무엇보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제일 먼저 움직여야 하는 작전이었다. 마케도니아군은 적의 기병을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해 45도로 비스듬히 배열했고 [[다리우스 3세|다리스우스]]는 [[이수스 전투]]에서 비슷한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결국 치고 내려왔다.
 
다리우스는 전차를 돌격시켰다. 마케도니아군은 전차의 단점에 대해 모두 파악한 상태여서 전차를 배치하지 않았으며 이어 전차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한 상태여서 맹렬하게 돌진하는 전차에 맞서 제1열이 비스듬히 물러나 틈을 열고, 제2열이 전차를 에워싸는 전술을 구사했다. 결국 전차는 쥐덫처럼선회를 마케도니아못하고 창병에공격도 하지 못한 채 마케도니아군 사이를 통과해버리는 바람에 마케도니아 의해창병에게 포위되었고, 마케도니아군은 손쉽게 기수를기수만 찔러죽일 수 있었다. 특히 마케도니아의 밀집보병 방진인 [[팔랑크스]]가 전차를 격퇴시켰다.
 
=== 알렉산드로스의 결정적인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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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치와 모루 ==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즐겨 사용하던 전술은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 당시 페르시아군을 격퇴하는데 사용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후에 그리스의 주력 보병 방진법인 [[팔랑크스]]를 [[모루]](철을 두드릴 때 받치는 받침대)로 적의 움직임을 막고, 발빠른 기병대를 전진 우회하여 적의 후방을 급습 전열을 흐트리며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전술이다. 이러한 전술은 후대의 [[칭기스 칸]]이 다시 쓰기도 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