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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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군 부인 서씨가 상언(上言)하여 파양을 청하니, [[조선 영조|영조]]가 하교하기를, “서로 헐뜯고 이간하여 어머니는 어머니답지 못하고 아들은 아들답지 못하며 며느리는 며느리답지 못하니, 엄히 사핵할 일이다. 그러나 결국 증거가 없으니 어떻게 사핵하겠는가? 그 어머니가 이미 소장(訴狀)을 올렸으므로 그대로 봉사하게는 할 수 없으니, 파양하여 본가로 돌려보내라. 아! 왕자의 봉사는 막중한 것이니, 형망 제급(兄亡弟及)의 예에 따라 봉사할 사람을 조용히 골라 정해야 한다.”하였다.
 
=== 낙천군 파양 논란 ===
정조가 은신군을 연령군의 봉사손으로 정했지만 확실한 계통정리를 하지 않았다. 순조 때 낙천군을 파양하느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발생했다.
 
그러나 낙천군이 생전에 연령군의 양자로 입양된 것과, 연령군의 양자로서의 책무를 다한 것 등이 감안되어 낙천군을 파양하느냐에 대한 의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선원보략]]에서도 명확하지 않아 장조의 아들 은신군으로 정한 선원보가 나오는가 하면 연령군 계후 은신군으로 정한 보략이 나오기도 했고, 남연군가문은 사도세자의 별자 혹은 삼자 은신군의 후손임을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한편 남연군가문의 일부 후손들은 인평대군의 후손임을 내세우기도 했다.
 
=== 은신군 봉제사 논란 ===
[[달선군]] 이영도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뒤에 [[연령군]]의 봉사손이 된 [[은신군]]이 낙천군의 제사 모시기를 주저했다는 견해가 있으나 은신군은 사후 연령군의 봉사손이 되었으므로, 확인된 바는 없다.
 
우선 낙천군 내외의 생일, 기일 제사는 [[남연군]] 가문에서 일단 받들었다. [[남연군]]의 후손들은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왕실 직계와 더 가까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 장조|장조]]의 후손임을 강조하다가 20세기 이후에 [[연령군]]과 낙천군을 가계상 선조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직계와 더 가까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 장조|장조]]의 후손임을 강조하다가 20세기 이후에 [[연령군]]과 낙천군을 가계상 선조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