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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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지방에서 프랑스의 식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영국은 허드슨만을 포함한 캐나다 이남 지역의 13개 식민지들에 대한 통제를 확립한다. 프랑스보다 큰 규모의 해군력과 자본력을 지닌 영국은 자국의 북미 식민지에 대한 방어와 확장에 지속적인 우위를 지킨다. 프랑스 본국정부의 뉴프랑스 지원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으며 북미의 프랑스 식민들은 대부분의 식민사업을 자신들의 힘만으로 일궈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유럽의 라이벌 강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영토확장 전쟁을 벌였으며 이는 서인도 제도와 캐나다 영토 안팎에서 셀 수 없는 전투를 촉발했다.
 
[[7년 전쟁]] 중 에이브러햄[[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전투]]에서 울프장군이[[제임스 울프|울프 장군]]이 전사하고 영국군은 대서양 연안주들을 점령한다. 앤여왕 전쟁의 결과로 성립된 Utrecht 조약을 통해 케이프 브레튼을 제외한 노바스코샤 지역이 영국의 수중에 떨어진다. 이로써 영국은 수천에 이르는 이지역이 지역 아카디아인들에 대한 통제를 획득한다. 늘 중립적 입장임을 강조하던 불어권 아카디아인들에 대한 영국의 불신은 이들 지역에 영국인 신교도들을 이주시키는 시도로 이어지나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1755년 1만2천여 명의 아카디아인들을 북미의 기존 영국 식민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것으로 결말지어진다. 그중 상당수가 남부 [[루이지애나]]에 정착하게 되고 이는 영불 혼합 문화의 하나인 [[케이쥰케이준 문화]]의 태동으로 이어진다. 몇몇 아카디아 인들은 영국의 강제 이주를 피해 몸을 숨겼고 나머지 사람들은 결국 노바스코샤로 귀환하게 한다. 그러나 뉴잉글랜드 지방으로부터 이 지역으로 이주해온 소위 양키들의 인구는 아카디아 인들을 압도하게 된다.
 
조지 왕의 전쟁 시기 영국식민군대는 한때 노바스코샤의 프랑스 세력의 주요거점이었던 케이프 브레튼 섬의 루이스버그를 점령하였으나 1748년의 영불조약에 의해 프랑스로 반환된다.
 
캐나다는 영불간의 7년 전쟁의 주요 교전지역 중 하나였고 영국은 1759년 에이브러햄[[아브라함 평원 전투의전투]]의 결과로 퀘백시에 대한 통제를, 그리고 1760년에는 모레알 즉 몬트리올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게 된다.
 
== 영국 제국의 통치 (1763~1849): 새 식민지, 미국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