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타르 스바치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5번째 줄:
[[1091년]] [[스체판 2세]] 국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크로아티아는 정치적 위기에 처하게 된다. [[드미타르 즈보니미르]] 국왕의 아내였던 일로나(Ilona)는 자신의 오빠인 [[헝가리]]의 [[라슬로 1세]] 국왕이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즉위하는 것을 지지했다.
 
크로아티아의 고위층 인사들과 성직자들은 헝가리의 라슬로 1세의 국왕의 주장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헝가리 군대의 공격으로부터 크로아티아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배치하는 한편 크로아티아의 귀족인 페타르 스바치치를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추대했다. 그렇지만 2년 전부터 군사 작전을 구상했던 헝가리의 라슬로 1세 국왕은 [[드라바 강]]을 따라 크로아티아 국경을 돌파했다. 헝가리 군대는 [[슬라보니아]] 전체 지역을 점령했지만 그보즈드 산(Gvozd)에 있던 크로아티아 군대에 의해 저지당하고 만다.
 
[[1095년]] 라슬로 1세가 사망한 이후에 라슬로의 조카인 [[칼만]]이 군사 작전을 계속 진행했다. 페타르 스바치치가 이끄는 크로아티아 군대는 약 2년 동안 헝가리 군대의 공격을 격퇴했다. 자신이 이끄는 군대의 무력함에 좌절한 칼만은 [[1097년]]에 그보즈드 산의 동쪽 기슭에서 수많은 병력을 투입했다. 페타르 스바치치는 헝가리 군대의 계속된 공격을 받고 전사하고 만다. 크로아티아에 위치한 페트로바고라 산맥(Petrova Gora)은 그의 영웅적인 행동에서 유래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