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하 노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 바이트 추가됨 ,  1년 전
편집 요약 없음
* '''[[노공필]]'''(盧公弼, 1445년 ~ 1516년) : [[노사신]]의 아들. 1466년 춘시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성균관 직강, [[홍문관]] 부제학 등을 지냈다. 1483년 [[대사헌]], 1489년 [[공조판서]]에 올랐으며 이후 육조의 판서를 두루 지냈다. 1500년 교성군에 봉해지고 1503년에는 [[의정부]] 우찬성에 올랐다가 중종반정 후인 1507년에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이 시기에 명나라로 가서 중종의 즉위 경위를 설명하고 명나라 왕으로부터 권서국사(權署國事)의 칙지를 받아 귀국하였다. 그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고 관직은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14년 궤장을 하사받았다. 시호는 공편(恭褊)이다. 아들 노섭(盧燮)은 사복시 첨정 등을 지냈다.
* '''[[노봉천]]'''(盧奉天, 1594년 ~ 1637년) :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 노경천(盧擎天)과 함께 충청감사의 군영에 합류하여 남한산성에 포위된 인조를 구하기 위해 선봉장으로 나서 싸우다 전사하고 후에 숙종 16년(1690)에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호는 병암(屛庵), 자는 여주(汝柱)이다. 창성군 [[노진]]과 충남 한산(서천)에 정착한 [[노윤보]]의 후손이다. 1617년에 음직으로 예빈검정(禮賓儉正)이 되었고 광해군 10년(1618)에는 북쪽의 여진족이 소란을 피우자 출전하여 큰공을 세웠으며,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에도 공을 세웠다.
* [[노용호]](盧龍鎬, 1904년 ~ 1970년) : 제1대 [[법원행처장법원행정처장]]
* [[노승환]](盧承煥, 1927년 ~ 2014년) : 제8·9·10·12·13대 국회의원. 민선1·2기 마포구청장.
* [[노재원]](盧載源, 1932년 ~ 2006년) : 제1대 駐 중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