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용 전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9 바이트 추가됨 ,  2년 전
잔글
잔글 (→‎여파)
에버크롬비는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지휘관 경력을 접어야 했다. 조지 호수에서는 그나마 의욕이 있었지만, 7월 13일 전쟁위원회에서 결정된 존 블래드 스트리트가 지휘한 성공적인 프론테냑 요새 공략과 같은 전투에서 지원하는 이상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브래드 스트리트는 7월 23일 3,000명의 병력과 함께 출발했다. 그리고 에버크롬비는 인력부족의 핑계를 들어 그 전투에 지원을 거부했다.
 
8월, 수상인총리인 [[제1대 채텀 백작 윌리엄 피트|윌리엄 피트]]가 육군의 군사 전략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카리용 대패 소식을 듣고, 9월 18일에 에버크롬비에게 편지를 보냈다. “국왕 폐하는 적절한 판단을 주셨습니다. 귀관은 귀국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에버크롬비는 그 후도 승진을 계속해서 1772년에 육군 대장까지 올랐다.
 
영국군과 동맹을 맺은 인디언들은 군의 완패를 직접 목격하였으며, 그 후 그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인디언들의 사이에 영국군 대패 소문이 퍼져서, 이후 전투에서 인디언 전사를 모집할 때, 군관계자들은 곤란을 겪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