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안양군 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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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이행의 어머니는 [[성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이다. 연산군은 생모인 [[폐비 윤씨#사사 사건 |폐비 윤씨 사건]]의 원인을 성종의 후궁인 정씨와 엄씨가 무고하게 왕에게 고(告)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연산군 10년(1504)에 안양군과 정씨, [[봉안군]](성종의 여섯째 아들)에게 사약을 내렸다. 1506년에 [[중종]]이 즉위하면서 복직되었고, 중종 15년(1520)에 부인의 상소에 따라 다시 장례를 지내도록 교지가 내려졌다.
 
묘는 부인 능성 구씨와의 합장묘이며, 묘역은 원래의 자리가 아니라 [[고종]] 32년(1895) 양주에서 석물과 함께 이장한 것이다. 봉분 앞에는 제물을 놓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장명등이 있다. 좌우로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망주석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묘역 앞에는 신종묵이 글을 짓고, 이일형이 글씨를 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