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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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세기 동안, 교황들은 이탈리아에서 종교적,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그 이유는 그 당시의 교황들이 항상 외부 세력의 침입에 방어 또는 통치를 부드럽게 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200년간 교황들은 로마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랑고바르드족에게 맞섰다. 마침내 교황은 [[피핀 3세]]와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등 두 프랑크족 왕의 지원을 받아 랑고바르드족들을 무찔렀다. 756년에 피핀의 영토 기증으로, 이탈리아 중부에 [[교황령]]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정치적 지배권을 확립했다.
 
랑고바르드족은 교황에게서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있었지만, 774년에 샤를마뉴가 그들을 파멸시켰다. 샤를마뉴는 그의 거대한 왕국에 [[랑고바르드 왕국]]이 추가되었다. 샤를마뉴의 힘이 입증됨에 따라, 그와의 교회와의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800년에 [[교황 레오 3세]]는 샤를마뉴를 로마 제국 황제의 왕관을 씌어줬다.<ref>{{서적 인용 |제목=The New Cambridge Medieval History: Volume II |last=McKitterick |first=Rosamond |authorlink=Rosamond McKitterick |year=1995 |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 |location=Cambridge |isbn=0-521-36292-X |page=105 |url=http://books.google.it/books?id=ZEaSdNBL0sgC&pg=PA105}}</ref> 814년에 샤를마뉴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루트비히 1세 (프랑크)|루트비히 1세]]가 계승하였다. 루트비히는 각자 영토를 가지고 싸우던 그의 아들들에게 영토를 나눠주었다. 이 싸움은 962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독일의 왕 [[오토 1세 (신성 로마 제국)|오토 1세]]까지 이어진다. 이는 후에 [[신성 로마 제국]]이라고 부르던 시작으로 기록된다.
 
=== 도시 국가들의 부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