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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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리리아]]로 계속해서 갔고, 몇 년 전에 전투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님처럼 대접받았다. 그러나 필리포스는 정치, 군사적으로 교육받은 왕자를 버릴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 양측의 사이를 조정한 가족의 친구인 데마라투스의 노력으로 6개월 뒤에 마케도니아로 복귀하게 된다.
 
다음해 [[카리아]]의 페르시아인 지도자인 [[픽소다루스]]는 그의 큰딸과 알렉산더의 이복형제인 아르히데우스의 결혼을 제안했다. [[올림피아스]]와 몇몇 알렉산더의 친구는 왕이 아르히데우스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필리포스의 의도라고 생각했고, 알렉산더는 테살루스를 사절단으로사절단을 보내 응답했다. 테살루스는 픽소다루스에게 적법한 후계자가 아닌 아들과의 이외의 결혼은 해선결혼하면 안 된다고 하며제안하며, 알렉산더를 대신해서 추천하였다. 필리포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협상을 멈추고 알렉산더에게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의 태자로서좋은 기껏해야아내를 페르시아의구했으면 좋다는 지방관의이유와 딸과함께 혼인을 할려고 하는 그릇밖에 안 되었냐고 하면서, 그 정도의 그릇밖에 안 된다면 절대로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심하게 꾸짖고, 이후꾸짖었다. 그는 알렉산더의 친구 4명을 추방하고 테살루스를 속박하여 데려오라고 [[코린티아]]에게 명하였다.
 
[[기원전 336년]] 여름, 왕의 딸인 클레오파트라와 [[올림피아스]]의 오빠 알렉산더 1세와의 결혼식이 열렸고 왕은 그의 경호대의 대장 [[파우사니아스]]에게 암살당한다. 그는 도망치려 했지만, 덩굴에 걸려 넘어지고 알렉산더의 동행을 포함한 그의 추종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로 인해 알렉산더는 귀족과 군대의 지지로 스무 살에 왕으로 추대되지만, 필리포스와 알렉산더의 사이는 평소 필리포스의 호색 행각들로행각으로 인한 알렉산더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더의 상처,취중에 벌인 일이긴 하지만 알렉산더를 죽일려고 한 점, 그리고 그이후필리포스의 한동안여러 알렉산더와왕자들중 올림피아스는장남이자 신변의위협을가장 느껴유능한 타국으로알렉산더를 후계자로 확정하지 않고, 다른 망명을왕자를 해야후계자로 했던물색한 점 등으로 인해 좋지 못했고않았고, 또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필리포스의 암살 배후로 알렉산더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이 되었는데도, 알렉산더는 필리포스의 암살 사전이나 사후에 올림피아스를 제지,제제하지 않은 점, 필리포스의 암살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사람들은 알렉산더 자신과 그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라는 점 등으로 필리포스의 암살 배후로 알렉산더와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알렉산더는 그의 잠재적인 왕위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그의 통치를 시작했다. 그는 친족을 제거하고 또한 두명의 마케도니아 왕자도 죽였지만, 세 번째 왕자 알렉산더 린세스테스는 살려주었다. 어머니 올림피아스와 필리포스 2세 사이에서 낳은 클레오파트라 유리다이스와 유로파가 있었는데, 산 채로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알렉산더는 격분했다. 그리하여, 클레오파트라의 삼촌이자 소아시아 군의 선발대 사령관인 아탈루스를 죽이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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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스 이후 알렉산더는 인더스를 건너며 포루스를 상대해 대파하고 그를 사로잡았지만 포루스의 용맹함에 감명받은 알렉산더는 그를 동맹으로 만들고 총독으로 삼았다. 그리고 원래 영역 이상의 땅들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그리스인 중 포루스의 통치를 도울 사람을 뽑았다. 알렉산더는 [[히다스페스 강]] 반대편에 두 도시를 찾아 그의 말의 이름을 따 부카펠라스라는 이름을 짓고, 다른 도시는 니케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갠지스 강]] 옆 동포루스 왕국은 [[난다 제국]]이었고, 더 동쪽으론 [[강가리다이 제국]]이었다. 보병 2만,기병 2천에 불과한 포루스군을 상대로이기긴 12만의 남짓의 병력으로했지만 크게 고전끝에 이긴고전한 이후, 알렉산더군은 사기가 떨어졌고 이후 길이가포루스군에 6km비해 남짓에비교도 폭이 180m 남짓한정도로 거대한 갠지즈 강을 건너는 일이 무리로 여겨졌고,훨씬결정적으로많은 포루스군의인도 10배도 훨씬 넘는 보병 20만,기병 8만,전차 8천대,전투용 코끼리 6천 마리를 거느린 간다라이와 프라이시오 족 왕들의내륙의 인도 내륙의 연합군들과 전투 직전의 상황에 내몰린 알렉산더군은 히페시스 강에서 항명사태를반란을 일으켰다일으켰고, 동쪽으로 넘어가길 거부했다. 알렉산더는 더욱 진격하자고 설득했지만, [[크라테로스]]가 병사들은 가족과 고향을 보길 원한다고 알렉산더를 설득해 마침내 동의하고 남쪽으로 말머릴 돌렸다. 그러므로 이 강은 알렉산더의 제국의 가장 동쪽이었다. 남쪽으로 말머릴 돌린 알렉산더군은 [[인더스 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말리족과 다른 인도 부족을 정복하고 공성 기간의 부상을 회복했다.
남쪽으로 말머릴 돌린 알렉산더군은 [[인더스 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말리족과 다른 인도 부족을 정복했으나 말리족과의 싸움에서 평생의 전쟁 활동 기간 중 가장 큰 중상들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위기를 겪었다.
 
== 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