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양부대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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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처음 [[경기도]] [[양주군]] 하도면 중흥동(重興洞) 병좌(丙坐)에 안장되었고, 후에 [[전계대원군]] 묘를 여러번 이장했다가, [[1856년]](철종 7년) [[3월 26일]] [[경기도]] [[포천군]] 주내면 선단4리(현 [[포천시]] [[선단동]] 선단4통)로 이장할 때, 그녀의 묘소도 이장되어 전계대원군의 묘소 오른쪽에 합장되었다. 묘비문은 [[1851년]](철종 2) 당시 공조판서 겸 [[규장각]]제학 [[김좌근]](金左根)이 짓고, 글씨는 [[흥인군]] 이최응이 썼으나 후에 실전되었다. 남편 전계대원군과 합장된 뒤 전계대원군의 비석 왼쪽에 완양부대부인 부우 라고 기록되었다.
 
그녀와 전계대원군이 합장된 선단동 산11-13번지 해룡산 임좌 동쪽 100m 지점에 그녀의 아들 [[이원경 (1827년)|이원경]]의 묘소가 있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