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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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청-일-러 3국의 3파전에 근심하던 고종황제는 이곳에서 활을 쏘며 피로를 풀었다. [[1922년]]<ref>경성공립중학교의 기록에는 1923년으로 표기되어 있다.</ref> 일제가 [[서울고등학교|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이를 받아 [[사직단]] 북쪽인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에 이축하였다.<ref name="경성부사1">{{서적 인용 | 제목 = 경성부사 제1권 | 출판사 = 경성부| 연도 = 1934 | 쪽 = 356}}</ref>
 
황학정이 있는 사직동의 등과정 자리는 한말까지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등과정]]은 경복궁 서편 [[인왕산]] 기슭 옥동(玉洞)에 있던 [[등용정]](登龍亭)· 삼청동의 [[운용정]](雲龍亭)·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太極亭)·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白虎亭)과 함께 인왕산 아래 서촌(西村) 오사정(五射亭)이라고 불렸다. 오사정을 비롯한 서울에 있던 이름 있는 활터는 일제 때에 전통 무술을 금지하면서 점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