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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한부터 북주까지 ===
진 멸망 후의 전란을 거쳐 한 왕조를 세운 [[전한 고제|유방]]은 파괴된 함양의 교외에 새로운 도성을 건설하고 '''장안'''으로 명명했으며, [[전한 혜제|혜제]] 때 성벽이 건축되었다. 장안성의 남쪽은 [[남두육성]], 북쪽은 [[북두칠성]]의 형태를 하고 있었기에 당시의 장안성의 별칭인 '''두성'''('''斗城''')이 탄생했다. 장안성에는 9시, 12문이 설치되었고 성내에는 [[미앙궁]](未央宮), [[장락궁]](長樂宮), 북궁(北宮), 주궁(桂宮)이라는 궁전이 있었으며(《삼보황도》) 전체적인 도시의 형태는 방형이 아닌 다소 찌그러진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후 전한, [[신나라|신]], [[후한]](멸망 전의 몇 년간), [[전조]], [[전진]], [[후진]], [[서위]], [[북주]]가 수도를 두고 있었다.
 
후한의 실권자 [[동탁]]은 태위 [[황완]]·[[사도 (관직)|사도]] [[양표]]의 반대를 내치면서 장안 천도를 강행했다.([[190년]])<ref>《[[후한서]]》 〈[[:s:zh:後漢書/卷9|제9권]]〉 “初平元年[...]二月[...]丁亥,遷都長安。[...]三月乙巳,車駕入長安,幸未央宮。”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