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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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 때 관제 개혁이 있었는데, 혜공왕 때 상대등 [[김양상]], 이찬 김경신등의 대신들의 주도로 관제 개혁을 모두 취소하였다.
 
[[삼국사기]]에는 [[780년]]에 [[김지정의 난]]이 일어나 혜공왕이 난의 과정에서 살해당했다고 하였는데, 시해한 인물이 누구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야사 [[삼국유사]]에는 혜공왕이 [[선덕왕|김양상]], 김경신에[[원성왕|김경신]]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 혜공왕을 마지막으로 [[태종 무열왕|무열왕]]계(武烈王係)의 직계 황통은 단절되었다.
 
혜공왕의 치세의 종말과 더불어 중대(中代) 신라는 끝나며, 신라를 왕위(王位) 투쟁과 호족의 난립으로 엉망이 되는, 끝없는 혼돈으로 몰아넣게 되는 하대(下代) 신라가 시작된다.
 
김지정의 난을 진압한 [[김양상]]이 무열왕계를 왕으로 세우지 않고 스스로 즉위하여 [[선덕왕]]이 되었다. 김양상은 사다함의[[사다함]]의 증손으로 내물왕의[[내물왕]]의 10세손이라고 한다.
 
== 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