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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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본의 성과는 달리 , 슈리성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문이나 각종 건축물은 옻나무로 주홍칠이 되어 있어, 기와 지붕에는 초기는 [[고려]]기와, 후에 적와가 쓰여져, 각 부의 장식에는 국왕의 상징인 [[용]]이 많이 쓰였다. 또, 전란이 없는 류큐국 시절에 재건된 적도 있어, 군사적 목적보다도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성곽은 다른 구스쿠와 같이, 류큐에서 주로 나는 석회암으로 쌓아 올려져 있다.
 
왕이 거주하는 중심부는 정전({{lang|ja|正殿}})이라 불리며, “가라하후”({{lang|ja|唐破風}})라고도 불린다. 안에는 1층과 2층의 양쪽에 우사스카({{lang|ja|御差床}})라는 옥좌가 만들어져 있으며, 2층의 우사스카 위에는 [[청나라]]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현판이 장식되어 있었으나 오키나와 전투에서 모두 소실되고, [[강희제]]가 내린 중산세토(中山世土)라는 편액만이 재현 복원되어 걸려 있다.
 
정전 앞에는 신료들이 알현하거나 중국에서의 책봉 사절을 맞아들이기 위한 우나가 만들어져 있다. 그것을 에워싸듯이 정치 시설인 북쪽 궁전, 의례 등에 쓰였던 남쪽 궁궐, 뜰로의 입구가 되는 봉신(奉神)문이 세워져 있다. 게다가 그것을 각종 문 · 성벽이 둘러싸는 형태로 되어있다. 이들 구조는, 중국의 [[자금성]]과의 유사성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남쪽 궁전은 [[사쓰마 번]]의 접대를 위해 쓰였기에, 여기만 일본풍의 의장이 쓰였다.
 
슈리성에서는 현재도 세이덴 뒤쪽의 새 생활 공간에 대한 건물의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본래의 목조건축로서 복원된 건물은 세이덴 뿐이다. 본전은 오키나와 본섬 북부의 산에서 큰나무를 옮기는 “목예식” 등의 의식이 행해져, 대만 등에서 목재를 써서 재건되었다. 다른 건물에는 콘크리트를 쓰는 등 외관만을 복원하였다. 옛 성벽은 일부가 남겨져 있고, 새로운 성벽의 건설을 할 때 발굴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표 가까이에 옛 성벽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원래의 슈리성의 유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