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오케 문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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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오케의 필요성은 서방교회인 로마교회에만 있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디오키아,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11세기까지 역사적으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의 치리 하에 있었던 로마교회, 즉 서방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치리를 거부하고 자치화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학]]적 수위권을 주장할 근거가 필요하였다.
 
로마교회에서 필리오케 문제는 이미 [[레오 3세]]가 필리오케가 불필요한 요소라고 인정하고, 서방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정하여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레오 3세]]의 결정을 거부해가면서, 11세기가 되어 [[베네딕토베네딕투스 8세]]가 이미 마무리된 문제, 케케묵은 필리오케 문구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 문구가 서방교회의 자립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로마교회는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로마교회가 베드로와 자신의 역사적 연계점을 주장할 수 있었고, 이는 다른 지역 교회에 비해 강조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사도 베드로와 필리오케는 융합하기 좋은 교리적 설계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