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오퀘 문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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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회에서 필리오케 문제는 이미 [[레오 3세]]가 필리오케가 불필요한 요소라고 인정하고, 서방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정하여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레오 3세]]의 결정을 거부해가면서, 11세기가 되어 [[베네딕투스 8세]]가 이미 마무리된 문제, 케케묵은 필리오케 문구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 문구가 서방교회의 자립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로마교회는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로마교회가 베드로와 자신의 역사적 연계점을 주장할 수 있었고, 이는 다른 지역 교회에 비해 강조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사도 베드로와 필리오케는 융합하기 좋은 교리적 설계 대상이었다<ref>한스 큉.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2) 404-413.</ref>.
 
[[성부]]만이 아닌 [[성자]]에서 성령이 발한다는 필리오케의 핵심은 로마교회의 총대주교를 교황이 되게 하는 중심 문구이고, 교황을 따르는 로마교회를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와 분리하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교리였다. 로마교회의 신학적 설계는 [[성자]]에게서 직접 수위권을 받은 베드로를 잇는 로마 총대주교만이 성자에게서 나오는 성령의 이끄심을 직접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성령의 이끄심을 받지 못하는 다른 총대주교보다 우위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우위성을 지닌 로마 총대주교는 교황이 되고, 교황이 이끄는 로마교회는 하위에 있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치리를 거부할 수 있다. 로마교회는 스스로 가장 우위의 교회이고, 다른 교회는 하위에 있으며, 로마 총대주교가 성령의 이끄심을 직접 따르는 최고의 교황이 된다는 교리적 설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로마교회, 서방교회 내부에서도 교황의 우위를 주장을 거부하는 지속적인 반대운동이 전개되었다<ref>E. G. 재이. 《교회론의 변천사》. 주재용 옮김. (서울: 기독교서회, 2002). 176-200. </ref>.
 
필리오케 교리는 로마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치리에서 벗어나는 로마교회 총대주교, 교황과 로마교회의 정치적 자립을 위한 교리로 사용되었고, 결국 공교회였던 시기를 끝내는 동서교회의 분열에 가장 중추적 교리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