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53번째 줄:
 
=== 변방성(邊防城) ===
요나라가 [[실위]]를 정복한 이후 현재 [[몽골]]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구역들이다.
 
==== 정주(靜州) ====
[[우란하오터 시|우란호트 시]] 북쪽 우란호트진(乌兰哈达镇)에 있었다. 관찰사가 주의 민정을 맡았다. 본래 태주(泰州)에 있던 금산이었지만 1116년(천경 6년)에 설치했다.
 
==== 진주 건안군(鎭州 建安軍) ====
[[몽골]] [[볼간 주]]의 툴강(Tuul)과 [[오르홍 강]]이 만나는 지역에 있었다. 절도사가 주의 민정을 맡았다. 본래 옛 가돈성(可敦城)이 있던 곳이다. 1004년(통화 22년)에 황태후의 조언을 받아들여 설치했다. [[실위]]와 우궐(羽厥)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민족에서 뽑은 2만명의 기병을 이곳에 주둔시켰다. 그러나 그들을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이(抽移)를 얻지 못했다. 유배로 들어온 발해인, 여진족, 중국인 700여호가 살았는데, 이들은 방주(防州, 진주 약간 동남쪽 툴강 근처)와 유주(維州, 진주 약간 서쪽에 있다.)에 나눠 살았다. 동남쪽으로 상경까지 3,000여리거리로 떨어져 있었다.
 
==== 하동성(河董城) ====
[[처이발상]] 서쪽에 있었다. 본래 [[위구르|회흘]]의 가돈성(可敦城)인데 말이 잘못 전해져 하동성(河董城)이 되었다. 오랜시간동안 버려졌다가 요가 이를 완전히 복구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고주(高州)경계에 살고 있는 여진족들이 약탈을 일삼던 이유로, 이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동남으로 상경까지 1,700리이다.
 
==== 정변성(靜邊城) ====
[[만저우리 시]]너머에 있는 [[자바이칼 지방]] 자바이칼스키 지방에 있었다. 거란 20여부족이 물과 풀을 얻던 곳이다. 북쪽에 이웃한 우궐이 자주 약탈을 했기에 성을 쌓고 1,000여명의 기병을 주둔시켰다. 동남으로 상경까지 1,500리이다.
 
==== 피피하성(皮被河城) ====
북쪽 변방에 위기가 생기자 500명의 군인들을 이곳에 주둔시켰다. 피피하(皮被河)가 회흘의 북쪽에서 나와 동남으로 우궐을 지나 여구하(臚朐河)로 들어간다. 하동성 북쪽근처를 흐르며, 동쪽에서 타록하(沱漉河)와 합쳐져 [[바이칼 호|바다]]로 들어간다. 남쪽으로 상경까지 1,500리이다.
 
==== 초주 수원군(招州 綏遠軍) ====
몽골 [[아르항가이 주]] 남쪽 부귀성(富貴城)에 있었다. 자사를 두었다. 1014년(개태 3년)여진족을 이곳에 이주시켜 설치했다. 서북로초토사(西北路招討司)가 주의 군정을 맡았다. 금나라가 세워진 뒤 [[케레이트|케레이트부]]가 이곳을 차지했다.
 
==== 탑라주성(塔懶主城) ====
피피하성 서쪽 근처에 있었다. 1083년(대강 9년)에 설치했다. 여구하가 있다.
[[분류: 요나라]][[분류: 내몽골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