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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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 대성당의 신축 비용 등을 확보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황이 면죄부 발행을 남발하자, 이에 항의하여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는 원래 새로운 교파를 세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가 애초에 비텐베르크 만인성자교회 게시판에 내건 [[95개 논제]]( Martin Luther’s Ninety-five Theses)는 바티칸에 있는 [[교황좌]]를 향한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 개혁을 위한 것이었다.<ref>[[장로교]] [[목사]]인 [[하승무]] [[교수]] 는 그의 논문 <종교개혁의 원리와 적용>에서 기술하였다.</ref>
그동안 [[교회]] 안에 들어온, 성경적 근거가 없는 미신과 풍습들을 정화시키고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을 고찰하고 이를 고치려 했다. [[기독교한국루터회|기독교 한국 루터회]] 누리집에 따르면, ‘루터란’이라는 명칭은 루터를 비판하는 이들이 루터파를 "루터를 따르는 똘마니"라고 경멸하는 말로 사용하였는데, 나중에는 이 말이 루터교회 스스로도 자신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 루터교회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된다. 루터교회는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루터 자신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 '루터'를 붙여서 부르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