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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에드먼턴은 크리, 블랙풋 [[인디언]]들이 살던 곳이었다. [[1795년]]에 [[허드슨 만]]과 노스웨스트 회사들이 [[서스캐처원 강]]의 북쪽에 [[모피]]의 [[교역]]지를 지었다. 허드슨 만의 교역지는 "에드먼턴 하우스"라고 불리었다. 후에 포트 에드먼턴이 되었고, 그 지명은 영국의 도시 에드먼턴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1821년]] 2개의 회사들이 병합될 때까지 교역지는 몇번씩 옮겨갔다. 포트 에드먼턴은 지방의 모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830년]] 현재 앨버타 입법부 건물의 대지 근처의 재건되었다. [[1892년]] 읍으로 합방되면서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1904년]] 도시가 되었고, 다음해 앨버타 주가 설립되었을 때, 그 주도가 되었다. [[1905년]]에는 에드먼턴과 캐나다 동부의 도시들을 잇는 캐나다 노던 철도 (현 [[캐나다 내셔널 철도]]의 전신)이 건설되었다. 철도들은 에드먼턴으로 많은 정착자들을 데려왔다. [[1912년]]에 서스캐처원 강 북쪽에 있던 주변 도시 스트래스코나가 에드먼턴에 통합되었다.
 
[[1926년]]에 [[공항]]이 생기면서, 도시는 곧 비행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의 [[육군]]이 알래스카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는 데건설하였는데, 그 도로는 에드먼턴이 북아메리카 북서부의 [[배달]]과 [[교통]]의 중심지로 설립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47년]] [[석유]]가 발견되자, 에드먼턴에 많은 석유 회사들을 불러들였다. 이 회사들은 정제소와 [[파이프]]를 지어 캐나다의 다른 지역들로 석유와 [[천연 가스]]를 공급하였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석유 산업에 일하러 에드먼턴으로 몰려들었다.
 
[[1960년]]대에는 도시 부흥에 힘을 썼고, [[1970년]]대에 건설 붐이 일어났다. 새로운 [[사무실]] 건물들이 다운타운 지역의 낡은 건물들을 재편하였으며, 도시의 몇 지역과 [[메트로폴리스]] 지역에 근대적 [[쇼핑]][[몰]]과 [[공장]]들을 세웠다. [[1978년]]에는 [[영연방경기대회코먼웰스 게임]] 개최하였다.
 
[[1987년]] [[6월 31일]]에는 [[토네이도]]가 일어나 많은 재산들이 손해를 입고, 27명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