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1551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44 바이트 추가됨 ,  3년 전
그 뒤 [[1597년]] [[정유재란]]에 이순신이 해임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고 조선조정에서 배설을 등용하여 보냈다. 부산에서 가덕도 거제도까지 수없이 패전을 하여 엄청난 병력을 잃고 [[칠천량]]에 주둔하였고 배설은 한산도기지에 귀환해야한다고 원균을 설득했고 김완과 다른 수군장수들도 설득했으나 원균은 자존심때문에 듣질않았다. 참다못한 배설은 탈영을 결심하고 원균과 김완에게 정찰가겠다고 허락을 받아내며 [[칠천량 해전]] 일어나기전에 전선 12척과 1000여명의 병사 주력정예군 120명을 수습하여 몰래 도주하여 탈영했다. 칠천량 패전 이후 [[이순신]]과 합류하여 [[이순신]]에게 자신이 수습한 전선과 병사들을 내주었다.
 
이순신이 13척의 함대로 적과 싸우겠다고 하여 배설은 불만이 컸고 육군에 합류해야한다고 조언하기도했으나 이순신은 바다를 버리면 조선을 지킬수없다하였고 화가난 배설은 이순신을 모욕적인 말을 내뱉으내며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그러나 배설은 살기위해서 병을 치료하기위해서 거짓으로 꾀병을 부리며 허락을받아내고허락을 받아내고 [[명량 해전]]이 일어나기 전에 탈영했으며 이에 도원수 [[권율]]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체포하려 했으나 계속 잡히지 않다가 [[1598년]] [[노량 해전]]을 끝으로 전란이 끝난 뒤에야 [[선산군|선산]] 땅에서 체포되어 참수형당했다
 
== 사후 ==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