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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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1830):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1777~1798): 작도법이아닌 작도가능함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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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의 최고의 거장 가우스는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벽돌 굽는 일을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우스의 아버지는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학문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벽돌 노동자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우스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우스는 유년 시절에 아버지와 자주 다퉜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우스의 학업에 대하여 긍정적이었고,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삼촌의 지원 덕분에 가우스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물론, 아버지는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이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지원으로 [[1792년]]부터 [[1795년]] 사이에 카롤링 학교({{llang|la|Collegium Carolinum}}, 지금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교(Technische Universität Braunschweig))라고 불리는 곳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후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도움을 받아서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가, 1795년부터 [[1798년]]까지 머물렀다. 괴팅겐 대학교에서 가우스는 몇 가지 중요한 이론들을 독립적으로 재발견하였다.
 
[[1796년]] 가우스는 변의 개수가 [[페르마 소수]]인 [[정다각형]]은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다. 특히, [[3월 30일]]에 [[십칠각형]]의 작도법을17각형의 작도 가능함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수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온 작도 문제에서 주요한 발견이었다. 훗날에 가우스는 이 결과에 너무 기뻐한 나머지 [[아르키메데스]]가 묘비에 [[원기둥]]에 내접한 구를 새겼고, [[야코프 베르누이]]가 묘비에 로그 나선을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묘비에 십칠각형을 새겨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묘비에는 십칠각형을 원과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17개의 점으로 된 별이 대신 새겨졌다. 또한, 가우스는 [[정수론]] 영역에서 [[합동 산술]]을 발견했고, 1796년 [[4월 8일]]에 최초로 [[이차 상호 법칙]]을 증명해 보였다. 이 놀라운 일반 법칙은 수학자들이 [[이차 방정식]]의 해결 가능성을 결정지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1796년 [[5월 31일]]에 추측된 [[소수 정리]]는 소수들이 정수들 사이에서 어떻게 분포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가우스는 모든 자연수는 3개의 [[삼각수]]들로 나타날 수 있음을 [[7월 10일]]에 증명해 보이면서, 그의 일기에 "Heureka! num=Δ+Δ+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796년 [[10월 1일]]에는 [[다항식]]의 유한한 영역에서 계수에 따른 해의 개수에 대한 연구 결과를 출판했다.
 
가우스는 대표적 저서인 《산술 연구》를 21살이던 [[1798년]]에 완성하였는데, 이는 [[1801년]]에서야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