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네덜란드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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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해전이 중심을 이뤘으며, 양쪽 모두 상대방의 본토를 침공하지는 않고 모두 어중간한 결과로 끝났다. 잉글랜드는 3차에 걸쳐 네덜란드와 개전을 통해 네덜란드 수출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688년 [[명예혁명]]에 의해 한때 적대적이었던 네덜란드의 군주 [[빌렘 3세]]를 잉글랜드 왕 [[윌리엄 3세]]로 맞이하게 된다.
 
18세기에 행해진 제4차 영란전쟁으로영국-네덜란드 전쟁으로 네덜란드의 국력은 피폐해졌고, 해상 교역의 우위를 잃었다. 맥밀란 국제 지역 연구 센터 소장을 맡았던 스티븐 핀커스와 같은 많은 저명한 역사학자들은 이 전쟁을 17세기의 일련의 전쟁과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분류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사학자들은 영국과 [[바타비아 공화국]]의 전쟁과 [[나폴레옹]] 시대의 [[홀란드 왕국]]과의 전쟁을 각각 제5차, 제6차 영란영국-네덜란드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 제1차 전쟁 (1652 ~ 1654) ==
{{본문|제1차 영란 전쟁}}
[[청교도 혁명]] 전쟁 중에 잃은 영국의 해운과 무역을 회복하고자 [[올리버 크롬웰]]은 1651년 [[항해조례]]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영국의 무역·어업으로부터 네덜란드인과 그 선박을 배제하려는 것이 직접적인 목적으로 이로 인하여 양국 해군은 충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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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17세기 전반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던 네덜란드가 곧이어 쇠퇴의 길을 걷는 전조가 되었다.
 
== 제2차 전쟁 (1665 ~ 1667) ==
네덜란드는 재정을 정비하고 해군을 확장하여 무역을 진흥시켰으나, 영국은 1660년의 [[왕정복고]] 후 [[찰스 2세]]가 항해 조례를 갱신하고, 1664년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뉴네덜란드]]를 침략하여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하고 이를 뉴욕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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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에서는 1665년 [[흑사병]]과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영국이 밀려 [[1667년]] 6월에 메드웨이 해전에서 네덜란드의 [[미힐 더 라위터르]] 제독이 템스강에 침입하여 하구를 봉쇄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1667년]] 7월에 〈[[브레다 조약]]〉(''Treaty of Breda'')으로 종결되었다.
 
브레다 조약의 주요내용은주요 내용은
 
# 양국의 영토는 대략 현상태를현 상태를 유지한다.
# 영국은 뉴암스테르담(오늘의 뉴욕)을 얻고, 네덜란드는 [[수리남]]을 확보한다.
# [[항해조례항해 조례]]를 수정하고 1662년 통상조약을 재확인한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 간에도 조약이 체결되어, 영국은 [[아카디아]]를 프랑스에 양도하고 [[서인도 제도]]의 영토를 얻었다.
 
== 제3차 전쟁 (1672 ~ 1674) ==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행한 침략전쟁 중의 하나로, 네덜란드의 무역 독점 타파를 목적으로 하였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네덜란드가 프랑스 망명자를 비호한 데 있다. 전쟁 준비로서 루이 14세는 앞서의 3국 동맹(네덜란드, 영국, 스웨덴)을 타파하고자 1670년에는 영국과 [[도버 밀약]]을 맺고, 1672년에는 [[에스파냐]]와 그리고 독일 제후들과 결탁하였다. 1672년 프랑스군은 [[라인 강]]을 건너서 [[네덜란드 전쟁|네덜란드에 침입]]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요한 더 빗]]이 암살되고 오렌지공 윌리엄이 총독이 되어 수문을 열고 홍수전술(洪水戰術)로 항전하였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행한 침략전쟁 중의 하나로, 네덜란드의 무역 독점 타파를 목적으로 하였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네덜란드가 프랑스 망명자를 비호한 데 있다.
 
전쟁준비로서 루이 14세는 앞서의 3국 동맹(네덜란드, 영국, 스웨덴)을 타파하고자 1670년에는 영국과 [[도버 밀약]]을 맺고, 1672년에는 [[에스파냐]]와 그리고 독일 제후들과 결탁하였다.
 
1672년 프랑스군은 [[라인 강]]을 건너서 [[네덜란드 전쟁|네덜란드에 침입]]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요한 더 빗]]이 암살되고 오렌지공 윌리엄이 총독이 되어 수문을 열고 홍수전술(洪水戰術)로 항전하였다.
 
1673년과 1674년 네덜란드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 [[레오폴트 1세 (신성 로마 제국)|레오폴트 1세]], 그리고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고, 또 영국과도 화해를 함으로써 프랑스에 대해 외교전술로 대항하였다. 전투는 네덜란드와 알사스, 그리고 지중해에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1678년 [[네이메헌 화약]]으로서 종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