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나 전투 (151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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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정보
|분쟁= 라벤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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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3세기부터 [[프랑스의 군주|프랑스 역대 왕]]은 토지가 풍요롭고 기후도 따뜻하며, 경제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이탈리아를 지배하기를 원하였다. 이탈리아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중간지역으로 전략적 가치가 있던 곳이었고, 또한 기독교 세력권 안에서도 프랑스는 패권을 다투던 [[스페인]], [[신성 로마 제국]]과의 싸움에서 교두보로써
프랑스왕 [[루이 12세]]의 이탈리아 침공은 이탈리아 여러
[[교황 율리오 2세|율리오 2세]]는 북 이탈리아에서 베네치아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주위의
==진행 과정==
[[1511년]] 11월 교황은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신성동맹]](神聖同盟)을 발족했다. 신성동맹에는 프랑스와 패권을 다투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을 자리에
1511년 5월 13일 프랑스군은 [[볼로냐]]를 함락시킨 뒤 아군의 거점중 하나인 [[페라라]]로 향했다. 이에 대해 교황군은 레이몬드 카르도나 지휘하의 스페인군과 합류해 볼로냐로 진격했다. 거기에 교황을 이용하여 프랑스세력을 몰아내려는 책략을 꾸미던 베네치아가 반교황측의 거점중 하나인
가스통은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보로냐에
가스통은 브레시아에서
당시 프랑스는 공성전때 성벽을 부수는데, 효율적이며, 야전시 백병전을 벌이기전 적의 병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대포를 매우 중시하여 상당량의 대포를 준비했다. 가스통
'라벤나 포위'라는 급보를 접한 교황군은 전력을 기울여 라벤나로 향했다. 복병을 주위하며 신중하게 전진한 교황군은 프랑스군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외곽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교황군의 총 사령관은 스페인의 명장으로 알려진 [[곤살로 데 코르도바]]의 후계자로써 명성을 떨치고 있던 레이몬드 카르도나였다. 그는 코르도바가 완성시킨 보병 밀집대형 [[테르시오]]
교황군이
가스통은 2,000의 병사를 남겨 라벤나에 대한 견제역할을 맡기고 론강을 건너
===전투===
아침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스통은 프랑스군 전면에 배치한 포병대에게 포격을 지시했다. 프랑스 포병대는 스페인군을 향해 맹렬한 포격을 개시했고, 굉음과 화약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날아간 철탄과 석탄은 스페인 보병대형에 떨어져 파편을 날리며 주위의 보병들을 살상했다. 이에 대항해 스페인군 포병대도 포격으로 맞대응했다. 양쪽간의 포격전은 그로부터 무려 1시간이상 계속되었다. 이때까지의 전투에서 이렇게까지 장시간의 포격전이 계속된 일은 없었다.
라벤나 전투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공격준비
포격전 속에서 스페인 보병은 참호에 몸을 숨겨 다행히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었으나 기병은 아니었다. 교황군 중장기병대는 이 포격에서 큰 피해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 가스통은 포병대에서 2문의 대포를 빼내어 이동시켜, 교황군 중장기병대를 가로질러 볼 수 있는 지점에 위치시키고는 포격을 가했다. 앞쪽과 측면에서 쏟아지는 포탄에 교황군 중장기병대는 초조함이 극에 달했고,
상식대로라면 이들은 프랑스 보병이나 포병대에 돌격해 분쇄할 수 있었으나, 중세이래 명예를 중시하는 기병들에게 전장에서 상대는 오로지 자신들과 같은 기병이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 때문에 교황군 중장기병의 목표도 프랑스군 상세베리노 추기경이 지휘하는 프랑스 중장기병대였다. 추기경 또한 명령을 내려 이에 맞섰다. 그때까지 프랑스 중장기병은 아직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기병VS기병의 맞대결은 금세 통제를 잃어버리고, 삽시간에 격전에 휘말렸다.
한편 전황 전체를 놓고 본다면 코르도나의 돌격은 변수에 속했다. 중장기병의 압력에 달아났던 데스테 장군은 다시 부하를 독려해 맹렬한 포격을 개시했고, 이 포격은 교황군 보병
이 전기(戰機)
그러나 서서히 병력에서 우위를 점한 프랑스군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때 교황군 전면에 나온 프랑스군 대포 2문이 포격을 가해 양군이 서로 싸우는 가운데 교황군 후방 방위선을 때렸다. 이 공격에 균형이 깨지면서 교황군 보병대는 공포에 빠져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것을
프랑스군 예비 중장기병대의 투입에 기진맥진해 있던 교황군 중장기병대는 삽시간에 무너졌고, 이 여파는 모든 전선에 영향을 미쳤다. 교황군은 모든 전선에 걸쳐 붕괴가 시작되었고, 가스통은 전과를 확대하기 위해 추격을 명령했다. 참호에서 나와 탈출하는 교황군 보병을 쫓던 프랑스군 앞에 그러나 완강하게 저항하는 부대도 있었다.
==결과==
이 전투로 프랑스군은 교황군을 격퇴하고
패배로 낙담해 있던 교황 율리오 2세는 프랑스군이
라벤나 전투는 중세와 이별하고 보다 조직적이고 기동력이 있는 전투가 주축이 되었다. 대량으로 배치한 대포가
==참고 및 참조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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