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레쑤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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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2011년 4월 24일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거주지 = 이탈리아 로마
| 정당 =
| 소속 집단 =
| 배우자 = 응오딘누
| 자녀 =
| 자녀 = 딸 : [[응오딘레투이]], 아들 : [[응오딘트악]](Ngô Đình Trác) 아들 : [[응오딘꾸인]](Ngô Đình Quỳnh) 딸 : [[응오딘레꾸옌]](Ngô Đình Lệ Quyên)
| 학력 =
| 종교 =
| 서명 =
}}
'''쩐레쑤언'''({{vie|v=Trần Lệ Xuân|hn=陳麗春|eum=진려춘}}, [[1924년]] [[4월 15일]] ~ [[2011년]] [[4월 24일]])은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남베트남]] 초대 대통령의 친동생인 대통령 고문 [[응오딘누]]<ref>[[응오딘지엠]] 초대 대통령의 친동생</ref>의 아내이다. 1955년부터[[1955년]]부터 1963년까지[[1963년]]까지 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 응오딘지엠의 제수로 퍼스트 레이디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왔다.
 
공산주의자에 의해 친정 오빠 2명이 살해당하면서 극단적인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초대 대통령 응오딘지엠의 제수로, 시숙이던 [[응오딘지엠]]이 미혼이었으므로 그가 대통령이 되자 의전상 등의 이유로 퍼스트 레이디가 필요하다는 주변의 건의로, 가족회의 끝에 정보부장관이던 동생 응오딘누의 부인이던 그를 퍼스트레이디로 정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마담 누'''(Madame Ngo Dinh Nhu)로 불린다. 별명은 '''드래곤 레이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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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초반 ===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라고 불리고 있던 현재의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쩐반쯔엉쩐반총]](Trần Văn Chương)은 [[응우옌 왕조의왕조]]의 관리로 법학 공부를 했으며 훗날 남베트남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를 지냈고, 할아버지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의 관료였다. 어머니 [[티난쩐]](Thị Nam Trân)은 [[동카인]] 황제의 손녀딸이자 [[바오다이]] 황제의 사촌 누나였다.
 
어려서 [[베트남]] 하노이의 외국어학교이자 명문 귀족 학교인 [[리세 알버트 스튜어트 학교]](Lycée Albert Sarraut)를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그녀는 번역 통역 일을 하며 프랑스어로 된 연설문 초안 등을 베트남어로 번역하고 베트남어 문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후 하노이의 국립극장에 취직하여 한때 솔로 댄스, 발레, 피아노 등을 하기도 했다. 쩐레쑤언은 후에 남베트남 대통령의 고문이 되는 [[응오딘누]]와 결혼했다.
 
=== 청년기 ===
결혼 후, 남편의 종교에 따라서 불교에서 기독교([[로마 가톨릭]])로 개종하였다. 이 때 살고 있던 후에 시내에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있어서의 프랑스가 패전하여 호치민이 인솔하는 베트민군이 진주 하여 응오딘지엠의[[응오딘지엠]]의 맏형 응오딘코이는 베트민군에게 산채로 생매장당했다. 또한 그녀를 포함한 일가는 4개월간 연금 되고, 하루 죽만 식사 하는 비참한 대우를 받아 맏형 일가는 총살된다. 이 연금중의 대우가 냉혹함이 그녀를 강렬한 반공주의자로 키워 갔다. 연금생활 중 쩐레쑤언은 아기, 시어머니와 생활하며 피신중인 남편 응오딘누 등과 연락하다가 호찌민의[[호치민]]의 분노를 사 외지의 섬으로 추방되었다가 얼마 뒤 석방되었다.
 
[[1955년]] 남편의 형인 응오딘지엠이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지만, 결혼하지 않고 독신주의자이어서, 응오딘지엠의 동생의 아내인 마담 누가 사실상 남베트남의 영부인으로 행사하였다. 마담 누라고 불린 쩐레쑤언은 남편 이상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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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레이디 ===
그녀의 천성은 격렬하고, [[1960년 ]]대 초기에 기독교 우대 정책과 불교에 대한 탄압을 추진한 응오딘지엠 정권에 항의하여 수도 사이공 시내에서 분신자살을 도모한 승려 틱광득의 행동을 "저런 것은 단순한 인간 바베큐야", "승려가 한 명 바베큐가 되었기 때문", "서구화에 항의하는데 미국제의 가솔린을 사용한다고 모순되고 있다"등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국의 인터뷰에서 야유하여 전 세계에서 대빈축을 샀다.
 
마담 누의 이 불공손적인 발언은 온 세계 미디어로 보도되어 당시의 남베트남의 동맹국인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분노를 사고, 남편과 시형(媳兄)의 목숨을 빼앗은 [[1963년]] [[11월 ]]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말해지고 있다.이와 같은 발언을 연발한 일과 실력자인 남편 권세를 빌려 강권적인 계속 태도를 취한 것으로부터, 서방의 언론으로부터 '''드래곤 레이디'''라는 별명을 붙여졌다.
 
=== 망명 ===
[[1963년]] 11월 군사 쿠데타 이후 [[응오딘레투이딩레투이]] 와 [[응오딘레꾸옌]]등 두 딸을 데리고 베트남에서 도망쳐 나오고, 이후 쑤언은 군사정권에 의해 재산 몰수와 함께 영구 귀국 불가 통보를 받았다. [[1964년]] 남베트남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입국이 거부되어 사실상 국외 추방이 되었다.
 
그는 미국을 방문하여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이탈리아로 이주을정치망명을 하였다. 두 딸은 프랑스로 유학 보냈는데 둘째 딸은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 다음 그는 미국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방국가에 전전하여, [[2011년]] [[4월 24일]] 이탈리아 로마의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가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