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루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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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뱌토슬라프 1세]] (재위 962~972년)은 동쪽과 남쪽으로 정복 활동을 펼쳐 키예프 대공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고, 당시 주요 교역국이었던 [[비잔틴 제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그 결과 [[블라디미르 1세]] 때에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기독교]]를 전래받아,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삼았으며, [[서유럽]] 국가들과도 많은 관계를 유지하였다.<ref name=아틀라스>{{서적 인용|저자1=지오프리 파커|제목=아틀라스 세계사|날짜=2004|출판사=사계절|쪽=64|판=2|확인날짜=2017-10-07}}</ref> 당시 블라디미르의 손녀들은 [[프랑스]] 왕, [[헝가리]] 왕, [[노르웨이]] 왕과 혼인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ref name=아틀라스/> 블라디미르 1세의 아들인 [[야로슬라프 1세]](재위 [[1019년]]∼[[1054년]])까지 키예프 공국은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채 키예프 대공국은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었고, [[흑해]]의 유목민이었던 [[폴로프치 족]]이 스뱌토슬라프 1세와 블라디미르 1세가 구축해놓은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1095년에는 [[키예프]]를 점령당하기에 이른다.<ref name=아틀라스/> 이후 [[블라디미르 모노마흐]](재위 [[1113년]]∼[[1125년]])가 즉위해 잠시나마 중흥기에 접어들었으나 [[12세기]] 중반에 이르면 수많은 공국으로 나누어져 이름만 남은 상태가 되면서 인구는 크게 줄어들었고, 결국 [[1240년]] 키예프의 쇠퇴기를 노린 [[몽골]]에게 키예프가 함락되면서 쉽게 멸망하였다붕괴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