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레쑤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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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레쑤언'''({{vie|v=Trần Lệ Xuân}}, [[1924년]] [[4월 15일]] ~ [[2011년]] [[4월 24일]])은 [[남베트남]]의 대통령 고문 [[응오딘누]]<ref>[[응오딘지엠]] 초대 대통령의 친동생</ref>의 아내이다.
공산주의자에 의해 친정 오빠 2명이 살해당하면서 극단적인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초대 대통령 응오딘지엠의 제수로, 시숙이던 [[응오딘지엠
== 생애 ==
=== 생애 초반 ===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라고 불리고 있던 현재의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
어려서 [[베트남]] 하노이의 외국어학교이자 명문 귀족 학교인 [[리세 알버트 스튜어트 학교]](Lycée Albert Sarraut)를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그녀는 번역 통역 일을 하며 프랑스어로 된 연설문 초안 등을 베트남어로 번역하고 베트남어 문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후 하노이의 국립극장에 취직하여 한때 솔로 댄스, 발레, 피아노 등을 하기도 했다. 쩐레쑤언은 후에 남베트남 대통령의 고문이 되는
=== 청년기 ===
결혼 후, 남편의 종교에 따라서 불교에서 기독교([[로마 가톨릭]])로 개종하였다. 이 때 살고 있던 후에 시내에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있어서의 프랑스가 패전하여 호치민이 인솔하는 베트민군이 진주 하여 [[응오딘지엠
[[1955년]] 남편의 형인 응오딘지엠이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지만, 결혼하지 않고 독신주의자이어서, 응오딘지엠의 동생의 아내인 마담 누가 사실상 남베트남의 영부인으로 행사하였다. 마담 누라고 불린 쩐레쑤언은 남편 이상으로 유명하다.
=== 퍼스트 레이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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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레이디 ===
그녀의 천성은 격렬하고, [[1960년
마담 누의 이 불공손적인 발언은 온 세계 미디어로 보도되어 당시의 남베트남의 동맹국인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분노를 사고, 남편과 시형(媳兄)의 목숨을 빼앗은 [[1963년]] [[11월
=== 망명 ===
[[1963년]] 11월 군사 쿠데타 이후 [[딩레투이]] 등 두 딸을 데리고 베트남에서 도망쳐 나오고, 이후 쑤언은 군사정권에 의해 재산 몰수와 함께 영구 귀국 불가 통보를 받았다. [[1964년]] 남베트남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입국이 거부되어 사실상 국외 추방이 되었다.
그는 미국을 방문하여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이탈리아로 정치망명을 하였다. 두 딸은 프랑스로 유학 보냈는데 둘째 딸은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 다음 그는 미국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방국가에 전전하여, [[2011년]] [[4월 24일]] 이탈리아 로마의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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