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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정밀기계공예라는 기업체를 운영하면서 [[일본군]]을 상대로 한 군수공업으로 부를 쌓았다. 손창식은 무기공장을 운영하며 비밀리에 일본 특무대에 무기를 지원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상하이에 본부를 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 항일 조직과도 연계를 맺으면서 이중적인 활동을 했다.
 
[[태평양 전쟁]] 중 비행기 대금을 헌납하고, [[삼천포]]에 신사를[[신사 (신토)|신사]]를 지을 때도 고액의 조영비를 냈다. 이 시기에 [[조선총독부]]가 자본가들을 대거 중추원 참의로 등용하면서 손창식도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1941년]]에 [[상해계림회]]가 조직되었을 때는 이사장을 맡았다. 상해계림회는 일본영사관과 일본군 부대, 특무기관 등과 밀착하여 일종의 밀정 활동을 수행한 단체였다. 손창식은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광복군]]에 가담한 [[한성수]]를 밀고하여 참수당하게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성수가 [[김학규 (1900년)|김학규]]의 지시에 따라 손창식을 찾아가 군자금을 요구했다가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었기 때문이다.<ref>{{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