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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년]] 7월에 아우인 [[양검]](良劍)과 함께 [[고려]](高麗)의 조물성(曹物城) 을 공격하여 그 장수인 애선(哀宣)을 죽였으나, 또다른 장수인 [[왕충 (고려 초기)|왕충]](王忠)이 완강히 저항하는 바람에 이득 없이 돌아갔다.
 
[[933년]] 5월에는 총군(統軍)이 되어 혜산성(槥山城)·아불진(阿弗鎭)을 거쳐 [[신라]](新羅)의 서라벌을[[서라벌]](徐羅伐)을 공격하려 했으나, 사탄(槎灘)에서 장사 80인을 거느리고 들이닥친 [[고려]](高麗)의 장수 [[유금필]]에게 패하였다. 7일 후에 서라벌에서 돌아오던 유금필과 다시 자도(子道)에서 싸웠으나, 또다시 패하여 금달(今達)·환궁(奐弓) 등 7인이 사로잡혔고 많은 병사를 잃었다.
 
이후 [[견훤]]이 10여 명의 아들 중 넷째 아들이자 [[견신검]]의 이복 아우로 추정되는 [[금강 (후백제)|금강]]에게 왕위를 전하려고 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두 아우인 [[양검]] · [[용검]] 등의 권유를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에 이찬 [[능환]](能奐)을 비롯한 몇몇 [[후백제]]의 관료들도 동참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935년]]([[왕건|태조]](高麗 太祖) 18년) [[음력 3월]]에 [[견훤]]을 [[금산사]](金山寺) 유폐하고 [[금강 (후백제)|금강]]을 살해한 후 [[대리청정|대리 집정]]을 하다가 같은 해 [[음력 10월 17일]]에 [[후백제]] 제2대 왕으로 등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