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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림: 한국 전쟁으로 대한민국의 우경화가 심해졌다는 것은 이유 없이 삭제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언급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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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60만 명이 [[전쟁]] 중에 사망하였고, 전체 참전국의 사망자를 모두 합하면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남한의 사망자는 백만 명이 넘으며 그중 85%는 민간인이다. 또한 [[미국의 군사|미군]]에 의해 피난민들이 학살당한 [[노근리 사건|노근리 학살사건]], [[거창]]주민들이 [[인민군]] 부역자로 몰려 학살당한 한국(남한)군의 대표적인 [[전쟁 범죄]]인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대중선동으로 인민군들이 [[우파]]들을 죽인 소위, [[인민재판]] 등의 전시 민간인 [[학살]]피해자 즉, [[전쟁 범죄]] 피해자들도 발생했다. 이러한 민간인 피해 및 전쟁범죄 사건의 규모는 극히 최근에 공개된 것이다. [[소련]]의 통계에 따르면 북조선의 11.1%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는데 이것은 113만 명에 이른다.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으며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미군은 약 54,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베트남 전쟁]] 때보다는 약간 적은 수이지만 훨씬 짧은 시기를 고려한다면 많은 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이승만]]이 예상했던 대로 위기의 이승만 정권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전쟁을 통해, 아직 꼴을 갖추지 못했던 국가는 이제 미군의 주둔과 미국의 경제지원으로 군사적·경제적 성장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있었고, 전쟁 이전부터 이승만정권의 이념이었던 [[반공주의]]가 더욱 극심해져, 남한의 우경화는 더욱 심해졌다. <ref> 한국전쟁은 이승만이~수 있었다.: 김동춘,《전쟁과 사회: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돌베개, 2000), 292쪽. </ref>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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