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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주'''(?~[[1521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생애==
본관 남양이며 [[연산군]] 7년 문과에 급제, 1504년 지평이 되고, 1506년 [[사복시]]첨정이 되었다.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1등에 책록, 남양군에 봉해지고 [[승정원]] 동부승지에 이어 [[도승지]]에 특진되었다. 이듬해에는 정난공신에 책록된 뒤 [[병조판서]], [[좌찬성]], [[호조판서]], [[대사헌]], [[좌참찬]]이 되었으나 사림파 출신 언관들의 [[탄핵]]으로 물러났다. [[조선 중종|중종]] 14년 [[훈구파]]의 일원으로 심정, 남곤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사림파의 신진 세력을 실각시키고 그 후 좌찬성과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그는 반정 직후 자신의 차녀를 정략적인 목적으로 중종의 후궁으로 입궁시켰는데 그녀가 바로 중종의 일품명부인 희빈 홍씨(熙嬪 洪氏)이다. 그녀는홍빈(洪嬪)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묘사화의주초위왕 직접적사건(나뭇잎에 발발요인인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走+肖=趙=조광조]을 사건에쓴 뒤 벌레들이 그것을 갉아먹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마치 하늘의 계시인 양 여기게끔 하였다. 중종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하여 조광조 등 사림세력 숙청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에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