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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상 교파와 신학 사조에 따라 성찬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인 해석을 갖고 있으며, 특히 성찬 때 예수께서 함께 한다는 의미에 대한 해석(영성체신학)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 '''기념설''': 신약성서의 복음서와 [[파울로스]](바오로, 바울로, 바울)의 편지로 1세기부터 전승되었고, 현재 [[개신교회]] 전반의 성만찬 이해이다. 교부시기인 3~4세기의 인물인 [[유세비우스]]는 상징설 즉 기념설을 주장하며,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의 펠라기우스 사상에 대한 비판에서 기념설에 대한 주장이 나타난다. <ref>베른하드 로제,《기독교 교리의 역사》 차종순 옮김. 서울: 목양사, 1990</ref> [[아우구스티누스]] 감독/[[주교]]의 스승이었던 [[암브로시우스]] [[주교|감독/주교]]는 성찬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상징"으로 설명한다.<ref>J. N. D 캘리,《고대기독교교리사》 박희석 옮김. 서울: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ref> 11세기 교회의 동서분리 이후 서방교회는 성변화가 강화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현재 [[개신교]] 대부분이 따르고 있는 성만찬 해석으로, 공재설과 상징설 등을 합쳐 가리키는 개념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상징설 즉 기념설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통해 더욱 발전하였고. 종교개혁 이전 [[베렌가리우스]]가 11세기 경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 표징과 상징으로만 현존한다"고 주장하였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루터교회]]·[[장로교회]] 등에서 [[마르틴 루터]]의 공재설, [[장 칼뱅]]의 영적 임재설 , [[울리히 츠빙글리]] 등의 상징설(기념설)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기념설에 따르면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상징으로서 기념하는 것일 뿐이며, 실제적이고 실체적으로 본질상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재설을 받아들이는 루터교회에서는 성찬을 몸에 먹으면서 그리스도의 영적 요소가 신자에게 깃든다고(공재) 가르친다. 영적임재설[[영적 임재설]]을 받아들이는 장로교회는 비록 성만찬이 실제로 육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으로 함께하심을 받아들인다. 성공회교회의 성사적 임재설<ref>'''영적성사적 임재설''':성사적 [[장 칼뱅|칼뱅]]은임재설은 [[기독교 강요성공회]] 성만찬 4권이해이다. 17장에서17세기경에 성찬식을확정되었다. 집중적으로[[빵]]과 다루었다.[[포도주]]가 칼빈의[[성만찬]]을 성찬식집전하는 이해는성직자, 루터와[[사제]]의 쯔빙글리를축성에 극복한의해 영적인예수의 임재설이다.성체와 표징(떡과성혈로 포두주)의변하는 의의를것은 지나치게아니지만, 강조하거나사제가 무시하지빵과 않으면서도포도주를 범신론이나축성할 유물론에때에 빠지지예수가 않고,성령의 성령을능력으로 통한임재한다는 예수이해이다.《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되어가는 몸의새로운 영적인 임재를그리고 주장함으로써우리》/홍영선 표징의지음/대한성공회 중요성을p.243-245 </ref>이 주장한다있다.
우리의 관심은 칼빈의 성만찬설에서 2천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있다. 사실 로마 카톨락 교회의 화체설, 루터파의 공재설, 쯔빙글리으 기념설 그리고 칼빈의 영적인 임재설 모두의 주된 관심이 "이것은 내 몸이니(est)"라고 할 때 'est'라는 동시에 집중되어 있다. 말하자면 성찬식을 거행하는 지금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표징 속에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인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주장들은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을 전제한다. 문제는 이 각각의 이론에서 2천년 전의 예수 사건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칼빈의 경우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한다.
칼빈은 성찬의 특별한 결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말함으로써 성찬이 2천년 전의 예수의 역사적 사역과 연관시킨다. 즉 성찬식때 그리스도와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그가 역사속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우리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의 죄를 마치 자신의 죄인 양 지시고 우리에게서 책임을 면제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정죄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감히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인애로 말미암은 놀라운 교환이다"(Inst IV,17,2). 이 구절은 분명히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2천년 전의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은 다음과 같은 발언 속에서 드러난다. "주의 몸과 피를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해서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그 몸과 피를 분배할지라도 유리에게 큰 유익이 없을 것이다."(Inst IV,17,3). 이 뿐 아니다. 칼빈은 더욱 적극적으로 성찬식 참여자가 역사속의 예수의 십자가에게 눈길을 주도록 만듦을 지적한다. "그것을 먹는 우리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선언하신 그 약속을 확인하는 것이 성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찬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보낸다"(Inst IV,17)
동시에 칼빈은 성육신론을 성찬식과 연결시킴으로써 성찬식이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을 전제함을 암시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죽을 성질을 공유하게 되심으로써 그의 신적인 영생을 우리에게 나눠 주실 때, 또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우리가 받을 저주를 자기가 받으시고 자신의 축복으로 우리를 가득하게 하실 때 스스로 죽으심으로써 죽음을 삼켜 없애실 때(벧전 3:22; 고전 15:54) 그리고 부활하셔서 그가 입으셨던 우리의 이 썩을 육을 영광과 썩지 않음으로 입히실 때에(고전 15:53-54) 그는 자신이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심을 나타내셨던 것이다"(Inst IV,17,4)
요컨대, 칼빈은 앞에 언급한 세 부류의 신학자들보다는 성만찬식 참석자로 하여금 2천년 전의 예수 사건과 긴밀하게 연관시킴을 볼 수 있다. 성찬식을 해석할 때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 또는 시간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우 미신화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성찬식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 수직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 식을 거행하며, 수평적인 차원에서 한 떡을 공동체가 함께 뗀다. 시간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과거의 한 시점을 향하고 동시에 미래의 한 시점으로 향한다.[http://theologia.kr/board_system/46807 권호덕, 칼빈의 영적 임재설]</ref>을 받아들이는 장로교회는 비록 성만찬이 실제로 육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으로 함께하심을 받아들인다. 성공회교회의 성사적 임재설<ref>'''성사적 임재설''':성사적 임재설은 [[성공회]]의 성만찬 이해이다. 17세기경에 확정되었다. [[빵]]과 [[포도주]]가 [[성만찬]]을 집전하는 성직자, [[사제]]의 축성에 의해 예수의 성체와 성혈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에 예수가 성령의 능력으로 임재한다는 이해이다.《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새로운 나 그리고 우리》/홍영선 지음/대한성공회 p.243-245 </ref>이 있다.
 
* 성변화(또는 실체변화, 이른바 화체'''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따르고 있는 신학적 해석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변화]]'''라고 한다. 2세기 이후에 등장했지만 기념설과 달리 논란이 되었던 개념이다. 4세기 동방교회에서 예루살렘의 키릴루스가 성찬의 성물이 여전히 지각할 수 있는 빵과 포도주로 남아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모형이라고 칭하는 상징론에 바탕을 둔 '''반상징, 반실체론'''이 주장되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도 상징론에 "성분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을 담아 초기 실체변화의 기초를 두었다. 5세기 이후 [[동방교회]]에서는 점차 반기념, 반실체론이 강화되어 초기 성변화가 널리 수용된다. 5세기 [[서방교회]]에서는 상징론, 기념설이 중심이었다가 점차 현재의 성변화의 초기 형태인 '실재설'이 등장하였고, 점차 현재의 실체변화 개념이 형성되었다. <ref>J. N. D 캘리,《고대기독교교리사》 박희석 옮김. 서울: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ref> 동서교회 분리 이후 12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변화를 13세기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교리화하였다. 성찬례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거룩함을 기원함)을 통해 질료로써의 빵과 포도주로 남아있으나, 빵과 포도주의 형상, 곧 본질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이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 한 것<ref>《[[요한 복음서]] 6장 51절 p.243-245</ref>과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스스로의 몸이라 하고 포도주를 스스로의 피라고ㅣ 한 것.<ref>[[마태오 복음서]] 26장 26절, [[마르코 복음서]] 14장 22절, [[루카 복음서]] 22장 19절, [[코린토 1서]] 11장 24절</ref>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에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