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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1993-12-11
|확인일자=2007-11-30
}}</ref> 하였다. [[남로당]]의거물간첩 [[김삼룡 (1908년)|김삼룡]]과 [[이주하]]를 체포<ref>{{뉴스 인용
|제목=오제도 변호사 별세
|url=http://www.lawnew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kind=AG&serial=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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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1-07-04
|확인일자=2007-11-30
}}</ref> 서울 [[남조선로동당]] 총책 홍민표를 전향시켜 남로당원 33만명을 자수시켜 다이너마이트 폭동계획을 저지시키고저지시켰다. 사실상이는 남로당을 와해시켜 남한 내에 공산주의 활동들을 사실상 거의모두 와해시켰다. 북한간첩 성시백, 여간첩 김소산 사건 등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공안 사건을 담당했다. 1950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우세가 점쳐지자 자유당의 하수단체인 대한정치공작대가 제1야당인 [[민국당]]인사들을 간첩들과 밀통하였다하여 붕괴시키려 하였다. 이에 의문을 품고 수사를 하여 조작극임을 밝혀내는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공산주의와 싸우는 동안 북한의한의 주적1호로써 신변의 위협이 많았는데 그를 없앨 목적으로 침투한 간첩이 서울 아현동에 세탁소를 차려놓고 암살을 하려다가 70년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5.16 군사정변에 검찰총장직을 제안 받았으나 거절하고 반혁명분자 1호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후에도 [[북한연구소]]를 창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는 등 여러 보수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박홍 (신부)|박홍]]의 [[한국통신]] 노조 [[주사파]] 발언 사건, [[권영해]]의 북풍사건을 변론하고 보수 우익 인사에 대한 지원에 힘썼다.
 
[[1977년]] [[정일형]]이 [[3·1 명동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치러진 종로 중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9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제11대에는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되었고 법무부 장관 제의도 있었으나 학원(學園)문제, 남북대화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84년말 의원직을 사퇴하고 안보교육활동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