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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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도 평화적이고 좋은 방법으로 좋은 세상(목적)을 만들 수 있었다면 수많은 전쟁과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이 말은 정치에 있어서만큼은 '''결과'''가 무척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철학에서 [[책임윤리]]라는 말이 있듯이 정치는 책임을 지는 것이고 책임은 결과로 판가름 난다. 백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잘못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으로 생을 일관했으나 말년에 변절한 사람이 많았는데, 여지없이 친일분자로 분류된다. 정치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것이기에 냉엄한 것이고 목적이 중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이 격언이 문제가 있다면 '''좋은 목적''', 즉 공공의 이익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냐는 것이다. 오늘날 좋다, 나쁘다부터가 철학적으로도 쉽게 판단할 수 없을만큼 복잡하고 더군다나 최고선이 무엇인지는 오리무중이다. 절대[[윤리]]와 상대윤리가 혼재하고, 수단과 목적도 명쾌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수단은 목적이 되고 목적은 그대로 수단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공(共)적 이익이 무엇인가를 놓고도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의 싸움이 아직도 계속 중인 이유다. 하지만 당대에는 비교적 단순한 사회여서 선, 악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으므로 마키아벨리는 선각자가선각자라고 아니라하는 사람도 수 없겠다있다.<ref name="김욱"/> {{Rp|35}}
한편, 앤터리 패럴은 " 만일 마키아벨리즘에 비판과 의문이 제기된다면, 인간, 근대성 자체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한 가지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를 공격한다 해도 근대성의 문제로부터 이 세계를 구할 수 없다."라고 함으로써 마키아벨리를 옹호했다.<ref>이상헌 역《마키아벨리》김영사,177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