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규 (190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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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공직자 정보
|이름 = 백파 김학규
|출생일 = [[1900년]] [[11월 24일]]
|원래 이름 = 白坡 金學奎
|출생일 = [[1900년]] [[11월 24일]]
|출생지 = [[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원군]]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 병사
|사망일 = [[1967년]]{{사망일과 [[9월 20일]] (66세)나이|1967|9|20|1900|11|24}}
|국적 =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사망원인 = 병사
|태어난 출생지 = [[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원군|평원]]
|거주지 =
|죽은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 [[마포구]]에서 병사
|국적 =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 복무 = [[일제 강점기]] [[광복군|대한광복군]]
|별명 = 호 백파
| 정당 = [[한국독립당]]
|학력 = 만주 문회고급중학교
| 배우자 = 김봉수(사별), [[오광심]](재혼)
|직업 =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가
| 본관 = [[신 안동 김씨|안동]](安東)
|종교 =
| 종교 = [[유교]]([[성리학]])
|배우자 = 김봉수, [[오광심]]
|자녀 자녀 = 아들 [[김일현]], 김일진(혼외자장자),<br/>김일진(혼외 출생 차남)<br/>김탄실, (장녀)<br/>김은순(차녀)
| 직책 = [[한국 광복군|前 대한 임정 예하 광복군 제3지대장]]
|부모 = 김기섭, 선우순
|복무 기간임기 = 1940년 ~ 1946년 6월
|친척 =
| 주석 = [[김구]]
|서명 =
| 부주석 = [[김규식]]
|웹사이트 =
| 학력 = [[지린 대학|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지린 원후이(문회) 고급중학교]] 졸업 <br/>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 행정학사 9기(1963년)
<!-- 이하 군경력 변수는 변수 중 하나 이상이 채워져야 화면에 나타남 -->
|계급= 대한광복군 [[3성 장군|중장]]
|부대복무=[[한국 광복군|대한광복군]]
|지휘= 광복군대한광복군 제3지대
| 부모 = 김기섭(부), 선우순선우 순(모)
| 친인척 = [[김성범 (1899년)|김성범]](이부 형)
| 복무기간 = 1919년 ~ 1946년 6월
| 계급 = [[3성 장군|대한광복군 중장]]
| 근무 = [[한국 광복군|대한광복군]] 제3지대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경력 =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및 군인 겸 정치가 <br/> 한국독립당 중화민국 둥베이 지방 특별위원회 위원장 <br/> 한국독립당 당수 <br/> 한국독립당 최고위원 <br/> 한국독립당 전임고문 <br/> 한국독립당 총재
}}
'''김학규'''(金學奎, [[1900년]] [[11월 24일]] ~ [[1967년]] [[9월 20일]])는 [[대한민국]]의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이다. 호(號)는 백파(白坡).
{{군인 정보
 
|이름=김학규
== 이력 ==
|생애= [[1900년]] [[11월 24일]] ~ [[1967년]] [[9월 20일]]
'''김학규'''(金學奎, [[1900년]] [[11월 24일]] [[평안남도]] [[평원군]] ~ [[1967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 [[마포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그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광복군|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활동하였고 광복군 제3지대장 등을 역임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그림=
 
|설명=
귀국 후에는 우익 정치인으로정치가로 활동, [[1948년]]의 [[남북 협상]]에 반대하여 임정 인사들을 설득하려다가 실패하고, 단정을 지지, 협상에 불참하였다. 이후 [[김구]](金九)와 갈등하던 중 [[안두희]]를 김구에게 소개해 주었다가 1949년 [[김구]]가 암살되자 암살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석방되었다.
|별명= 호 백파
|태어난 곳= [[평안남도]] [[평원군]]
|죽은 곳= [[서울특별시]] [[마포구]]
|복무=[[일제 강점기]]
|복무 기간=1940년 ~ 1946년
|최종 계급= 광복군 장군
|부대=[[한국 광복군]]
|지휘= 광복군 제3지대
|주요 참전 전투/전쟁=
|서훈 내역=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기타 이력= 한국독립당 동북특별위원회 위원장, 당수
|}}
'''김학규'''(金學奎, [[1900년]] [[11월 24일]] [[평안남도]] [[평원군]] ~ [[1967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 [[마포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일제 강점기]]에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 광복군 제3지대장 등을 역임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귀국 후에는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 [[1948년]]의 [[남북 협상]]에 반대하여 임정 인사들을 설득하려다가 실패하고, 단정을 지지, 협상에 불참하였다. 이후 [[김구]](金九)와 갈등하던 중 [[안두희]]를 김구에게 소개해 주었다가 1949년 [[김구]]가 암살되자 암살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석방되었다.
== 생애 ==
=== 생애 초기 ===
==== 출생과 생애 초기 ====
김학규는 [[1900년]] 안동 김씨 김기섭과 김순욱의 미망인인미망인 선우순출신이었던 선우 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선우순은 전남편前 남편 김순욱([[1898년]] 사망)과의 사이에서 얻은 이부 누나 김길란(1896~1947)과 이부 형 [[김성범 (1899년)|김성범]]과 딸을(1899~1930)을 데리고 김기섭과 재혼하였다.
 
==== 중국 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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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과 광복군 참여 ====
{{참고|한국 광복군}}
[[1936년]] [[남경]]에서 [[현익철]]·[[양기탁]](梁起鐸)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 비상대회를 열었으며, 공산주의자들이 분리되어 나가자 조선민족혁명당이라 개칭하였다.<ref name="공훈록1"/> 그 뒤 [[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건너왔다. [[1939년]] [[쓰촨성쓰촨 성]] 기강에서 [[한국독립당]]을 창당하는데 참여하였다.<ref name="공훈록1"/>
 
[[1940년]] [[한국 광복군]]이 창설되었을 때 광복군 제3지대장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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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연]]은 [[김구]]를 정점으로 하는 남북협상파와 [[김규식]]을 정점으로 하는 좌우합작파를 모두 [[공산주의]] 노선과 비슷할 뿐 아니라 정부 수립에 크나큰 방해인물들로 단정했다.<ref name="song387"/> 그래서 (남북협상 당시) [[공산당]]이 [[김구]]에게 정치자금을 조달한다는 설이 있자 곧 《[[동아일보]]》 지상을 통해 다음과 같은 규탄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ref name="song387"/> 이때 김준연이 발표한 성명서에 그는 크게 분노한다.
 
{{인용문|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5·10 총선거는 우리 5천년 역사에 길이 빛날 광명의 전환점입니다. ...(이하 중략)... 그러나 침략주의 외세 [[소련]]은 '약소민족 해방'이라는 허울 좋은 탈을 쓰고 우리 민족을 다시 자기들의 노예로 만들려는 음모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소련의 주장을 지지하고 토지의 국유화를 원칙으로 한 [[공산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시도하는 무리들이 이 땅에 있다는 것은 통탄해 마지 않을 일입니다.<br><br> 이들은 민족의 숙원인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소위 남북협상이라는 빛 좋으느좋은 통일방안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소위 남북협상에서 얻<ref name="song387"/> 어온 것이 무엇입니까.<ref name="song388">송건호, 송건호 전집 13 (한길사, 2002) 388페이지</ref><br><Br>우리 민족을 노예화하겠다는 소련의 궤도에 맹종한 것 외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러면 [[김구]], [[김규식]] 등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겠습니까? 동포 여러분은 매우 이상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결코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김규식]]은 한때 [[공산당]] 당원이었고<ref>1921년 모스크바의 극동인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려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 김준연도 한때 국내의 조선공산당 당원으로 있었다.</ref> [[김구]]는 토지의 국유화를 주장했으니만큼 [[김구]] 역시 [[공산당]] 노선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직까지 민족적 입장을 저버리고 계속 [[공산당]]과 손을 잡고 다시 [[남북협상]]을 기도하고 있습니다.<br><br>
동포 여러분-나는 이들을 동포의 이름으로 규탄하거니와 동포 여러분은 이에 새로운 인식과 각오가 있어야 하겠습니다.<ref name="song388"/><br><br>                        [[한국민주당]] 김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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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암살되자, 암살범 [[안두희]]의 [[한국독립당]] 입당을 주선한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하였다.<ref name="안동의성1"/> [[김구]]가 경교장에서 암살되던 날 그는 [[경교장]]에 모인 측근에게 혈서를 하나 보여주었다.
 
사건 직후 [[경교장]]에서 보좌진을 부른 그는 자신이 소지하던 손수건 두 장 크기의 하얀 천을 한장 보였다. 천에는 "나는 [[미국]]제국주의의 주구 [[이승만]]을 타도한다"는 혈서가 쓰여 있었다.<ref name="ahnui">동아일보 1992.04.15, 6면 정치면</ref> 보좌진들이 누가 쓴 것이냐 라고 붇자묻자 김학규는 "[[안두희]]가 백범 선생 앞에서 쓴 것"이라며 믿었던 [[안두희]]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분해하며 부르르 떨었다.<ref name="ahnui"/>
 
이 사건 직후 김학규는 [[안두희]]의 혈서를 그대로 불에 태웠다.<ref name="ahnui"/> 그러나 김학규가 [[안두희]]를 [[김구]]에게 소개해서 이승만 암살을 도우려 했다는 정보가 [[이승만 정권]]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는 애매한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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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희선 의원이 안동 김씨라고 주장한 김학규는 의성김씨나 안동김씨 족보에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ref name="안동의성1" /> [[동아일보]]의 안동김씨 종친회 측의 문의 결과김학규 장군이 안두희(安斗熙)를 김구(金九) 선생에게 소개한 분이라는 얘기가 있어, 족보 전체를 꼼꼼히 살펴봤으나 그의 이름을 족보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답변하였다.<ref name="안동의성1"/> 한편 안동김씨 측은 김학규 장군 연배의 '안동 김씨' 돌림자 항렬은 규(圭)ㆍ진(鎭)ㆍ한(漢)ㆍ동(東)으로, [[김옥균]](金玉均)이 [[갑신정변]] 때 역적으로 몰리면서 고종이 25세손 항렬자인 '균(均)'을 '규(圭)'로 대체해 사용하도록 했다고 설명하였으며, 김학규 장군의 '규(奎)'는 '별 규'자로 '안동 김씨' 문중에서 쓰는 항렬자가 아니라고 답변하였다.<ref name="안동의성1"/> 한편 [[1969년]] 방국진과 결혼한 [[김희선 (정치인)|김희선]]은 [[1970년]]의 호적에 '의성김씨'로 등재되어 있다.<ref name="안동의성1"/>
 
김학규의 유족측은 [[김희선 (정치인)|김희선]]이 김학규의 친손녀가 아니라 김학규 이부형의 손녀라고 증언하였다.<ref name="진실1">[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id=20040920003003 (뉴스플러스) "김학규장군 의성김씨 아니다"] 서울신문 2004-09-20, 23면</ref> 김학규의 딸 김은순은 [[2004년]] [[9월 24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학규가 의성김씨가 아니라고 발표하였으며, 그의 어머니가 안동 김씨 집안으로 재가해 새로 낳은 아들로, [[김희선 (정치인)|김희선]]이 주장하듯 의성김씨 집안 자손이 아니라고 발표하였다.<ref name="진실1"/> 김은순의 증언에 의하면 증조모(선우순)가 낳은 아들은 모두 3명,딸은 1명으로 의성김씨 전 남편과 사이에서는 김성범과 딸을 하나 낳았고, 안동 김씨 집안에 재가한 뒤 낳은 첫아들은 어릴 때 죽었고 둘째아들이 김학규라고 증언하였다.<ref name="진실1"/>
 
[[2005년]] [[6월]] 국회 정무위원회는 김학규와 [[김희선 (정치인)|김희선]]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그동안 김희선이 김학규 장군의 친손녀임을 내세운 바와 달리 그의 직계 친손녀가 아닌 것으로 확인하였다.<ref name="정무위1" /> [[6월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에 대해 정무위원장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직의 사퇴를 공식 촉구하고 나섰다.<ref name="정무위1"/> [[2006년]] [[1월 27일]] 서울고법은 김희선 의원의 작은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김학규 장군과 혈연관계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였고 또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을 개연성이 있고 김희선 의원의 부친이 독립운동가라는 주장도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무죄 판결하였다.<ref name="보수언론 공격받던 김희선 '무죄'"/>
 
=== 출생년도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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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병사한 사람]]
[[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
[[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중장]]
[[분류:한국의 군정기]]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반일 감정]]
[[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
[[분류:한국 전쟁 관련자]]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분류:유교 신자]]
[[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분류:조선혁명군]]
[[분류:광복군]]
[[분류:대한민국 임시 정부]]
[[분류:신흥무관학교 동문]]
[[분류:지린 대학 동문]]
[[분류:국방대학교 동문]]
[[분류:자유 연애]]
[[분류:조선민족혁명당]]
[[분류:김구]]
[[분류:의친왕]]
[[분류:한국독립당 (1930년)]]
[[분류:이범석 (1900년)]]
[[분류:김규식]]
[[분류:윤보선]]
[[분류:한국독립당]]
[[분류:안동 김씨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