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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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그 기원이 올라간다. 이 지역은 [[진 시황제]] 시절에 첫 번째로 병합되었으며, [[당나라]]와 [[송나라]] 당시 무역항과 해군 기지로 활용되었다. 이 지역의 첫 번째 서구인은 1513년에 상륙한 [[포르투갈]]인인 [[조르제 알바레스]]이다. [[영국]]과의 접점은 [[영국 동인도 회사|동인도 회사]]가 [[광둥 성]] 근처 도시에 무역항을 건설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1839년]]에 [[청나라]]의 승인으로 이루어진 아편 수입 금지안은 중국과 영국 사이의 [[제1차 아편 전쟁]]을 낳았다. 홍콩 섬은 [[1841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난징 조약]]으로 [[청나라]]로부터 [[홍콩 섬]]이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이듬해 영국은 [[빅토리아 시티]]의 건립과 함께 [[홍콩 총독|홍콩총독부]]를 신설하였다. [[1860년]] 중국의 [[제2차 아편 전쟁]] 패배 이후에 [[가우룽]](구룡)이 [[베이징 조약]] 하에 영속적으로 영국에 귀속되었다. [[1898년]]에 영국은 홍콩과 인접한 북부 섬과 신 행정구역으로 알려진 [[신제]](신계)를 99년 간 [[조차지|조차]]받았다. [[19세기]]의 홍콩은 영국의 주요 무역항이었다. 홍콩은 영국의 물산
[[파일:1945 liberation of Hong Kong at Cenotaph.jpg|thumb|300px|left|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1945년,<br />해방을 맞이한 홍콩.]]
[[1941년]] [[12월 8일]] [[일본 제국]]은 홍콩을 점령했다. 홍콩이 일본
[[1949년]] [[국공내전]] 이후 [[중화민국]]이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패퇴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을 때, [[중국 공산당]]의 억압을 피하기 위해 많은 [[중국인]]이 홍콩으로 이주하였다<ref>홍콩은 [[중화민국]]([[타이완]]), [[대한민국]]([[인천광역시]]), [[일본]]([[나가사키]])와 함께 [[반공주의]] 신념을 가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망명하는 도시가 되었다.</ref>. [[1978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경제 개혁안을 시작했을 때, 홍콩은 [[중국 대륙]]에 투자되는 외국 자금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다. 이듬해 [[선전 시|선전]] 경제 특구가 설치되었고, 재정과 금융 분야에서 계속해서 영향력이 커지면서 [[홍콩의 산업]]은 [[제조업]]과 [[섬유]]에서 점진적으로 [[3차 산업|서비스 업종]]으로 대체되었다.
[[1984년]]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영국은 [[1997년]]에 홍콩의 주권을 영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전하는 것에 동의하는 조약에 서명하였다. 이 조약은 홍콩이 50년 동안 [[법]]과 자치권을 유지하는 특별 행정 구역으로 수행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양도 후 [[헌법]]
홍콩의 경제는 [[1997년]]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덮친 아시아 외환 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H5N1]] (조류 독감) 역시 그 해 홍콩을
항간에 홍콩이 2020년 중국 본토에 위치한 경제 특구 [[선전 시]]와 통합된다는 잘못된 소문이 있으나 일부 중국 내 그리고 홍콩내 친(親)공산당 정부 인사들의 주장이 뉴스에 나온
* 홍콩의 자치가 [[2047년]] 소멸되어 자치권이 중국 중앙정부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이는 확정되지 않았고, 실현 가능성도
실제 홍콩과 중국은 사소한 것까지 법이 달라 쉽게 통합이 불가능하며 혼란을 방지하고자 중국 측으로서는 50년의 시간을 두고 차이를 좁혀본 후 진전이 없을 경우 그 시효를 자동적으로 또 50년 연장하게 된다는 것이 홍콩 법조계의 주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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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 [[일국양제]] ===
홍콩의 정치 제도는 대체로 [[영국]]이 통치했을 때의 행정, 입법, 사법을
하지만 여전히 홍콩 내외의 정치인 및 여론, [[일국양제]]를 질의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예를 들면, [[파룬궁]]이 홍콩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 [[베이징]]에서 홍콩의 [[보통 선거]]를 쟁취하려는 모습, 홍콩의 [[정치인]]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제도에 대한 의견을 공개 발표하는 것, 2007년 행정장관 입후보자 [[렁춘잉]]({{zh|t=梁振英}})은 중앙 정부에서 특구 관원 임명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제기하는 등,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질의하게 하는 것은 라는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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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 ===
[[파일:Government House rightview.jpg|thumb|300px|홍콩특별행정구 정부 청사]]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홍콩의 행정장관|행정장관]]({{llang|en|Chief Executive}}, {{llang|zh|行政長官}})이 이끌고 있다. 행정장관은 [[간접 선거]]로
행정장관이 주관하는 행정회의({{llang|en|Executive Council}}, {{llang|zh|行政會議}})는 홍콩에서 [[행정부]]에 상동하는 기관이다. 초대 행정장관은 [[둥젠화]]이며,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위임하는 400명이 추천 선발하여 [[1996년]] [[12월]]에 제1차 행정장관 선거에 승리했다. [[2002년]] [[2월]], [[둥젠화]]는 800명의 선거 위원회에서 700명 이상의 추천을 얻어, 제2회 행정장관 선거에 참여했고, 상대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선거를 통하지 않고 연임했다. 그는 [[2005년]] [[3월]]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사임했고
둥젠화 전 행정장관은 2002년 7월 1일 문책제({{zh|t=問責制}})를 실시한 후에 행정 장관 및 행정회 이외, 홍콩 정부는 3등급으로
* 첫 번째 등급은 국장인데, 정무 국장, 재정 국장 그리고 법정 국장이 있다. 모두 행정 장관의 수석 고문이고, 홍콩 정부의 최고로 중요한
* 두 번째 등급은 정책을 결정하는 국장이다.({{zh|t=決策局}})
* 세 번째 등급은 정행의 집행 부분이고, 기관의 이름도 “서({{llang|zh|署}}) 혹은 “처({{zh|t=處}})”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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