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지번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봇: 특정 http → https 변환 |
|||
62번째 줄:
'''5주지번뇌'''는 [[근본번뇌]]를 다섯 가지 유형 또는 그룹으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5주지혹'''(五住地惑) 또는 줄여서 '''5주지'''(五住地)라고도 한다. 5주지 각각에 속한 번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A3%BC%EC%A7%80%EB%B2%88%EB%87%8C&rowno=1 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2013년 5월 3일에 확인|ps=<br>"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無明)의 번뇌를 5종에 나눈 것. (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또는 일체견주지(一切見住地). 견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 이것은 지적(智的)인 미(迷)로서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라 하고, 주지(住地)는 번뇌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의 의지가 되며, 또 번뇌를 내는 것이므로 주지라 함. (2) 애욕주지(愛慾住地). 욕은 욕계(欲界), 애는 탐애(貪愛), 곧 사혹(思惑). 사혹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의 4에 통하거니와 탐애는 다음 생(生)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탐애로써 사혹을 나타냄. 주지는 위와 같음. (3) 색애주지(色愛住地). 색계의 사혹(思惑). (4) 유애주지(有愛住地). 유는 무색계. 무색계의 사혹. (5) 무명주지(無明住地). 무명은 우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 온갖 번뇌의 근본인 것. 주지는 위와 같음. 『승만경(勝鬘經)』에는 아라한ㆍ벽지불 등은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 함."}}{{sfn|곽철환|2003|loc="[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번뇌.
<br>(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이것은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見一處)라고 함.
447번째 줄:
<br style="margin-bottom: 10px">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br>解釋:
(術語)稱十大惑之根本煩惱強盛者云上煩惱。或名現起之煩惱云上煩惱。勝鬘寶窟中末曰:「四住所起煩惱麤陰名上。」又「霑於諸佛上法故名為上也。」大日經疏十一曰:「一切難伏者亦可伏之,謂上煩惱及隨也。」起信論曰:「過恒沙等上煩惱依無明起。」"}}{{sfn|곽철환|2003|loc="[
<br>①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br>② 근본 번뇌가 왕성하게 일어남.
605번째 줄:
<br>Bukkyōgo daijiten (Nakamura) 507d
<br>(Soothill's)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170"}})는, "대체로 말해", [[욕계]]{{.cw}}[[색계]]{{.cw}}[[무색계]]의 '''3계의 모든 견혹'''(見惑)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A3%BC%EC%A7%80%EB%B2%88%EB%87%8C&rowno=1 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2013년 5월 3일에 확인|ps=<br>"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無明)의 번뇌를 5종에 나눈 것. (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또는 일체견주지(一切見住地). 견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 이것은 지적(智的)인 미(迷)로서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라 하고, 주지(住地)는 번뇌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의 의지가 되며, 또 번뇌를 내는 것이므로 주지라 함. (2) 애욕주지(愛慾住地). 욕은 욕계(欲界), 애는 탐애(貪愛), 곧 사혹(思惑). 사혹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의 4에 통하거니와 탐애는 다음 생(生)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탐애로써 사혹을 나타냄. 주지는 위와 같음. (3) 색애주지(色愛住地). 색계의 사혹(思惑). (4) 유애주지(有愛住地). 유는 무색계. 무색계의 사혹. (5) 무명주지(無明住地). 무명은 우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 온갖 번뇌의 근본인 것. 주지는 위와 같음. 『승만경(勝鬘經)』에는 아라한ㆍ벽지불 등은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 함."}}{{sfn|곽철환|2003|loc="[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번뇌.
<br>(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이것은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見一處)라고 함.
814번째 줄:
<br>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1255a
<br>Bukkyō daijiten (Oda) 553-1-6*743-2-23*1768-2"}})는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을 제외한 '''욕계의 수혹'''(修惑)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A3%BC%EC%A7%80%EB%B2%88%EB%87%8C&rowno=1 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2013년 5월 3일에 확인|ps=<br>"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無明)의 번뇌를 5종에 나눈 것. (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또는 일체견주지(一切見住地). 견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 이것은 지적(智的)인 미(迷)로서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라 하고, 주지(住地)는 번뇌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의 의지가 되며, 또 번뇌를 내는 것이므로 주지라 함. (2) 애욕주지(愛慾住地). 욕은 욕계(欲界), 애는 탐애(貪愛), 곧 사혹(思惑). 사혹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의 4에 통하거니와 탐애는 다음 생(生)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탐애로써 사혹을 나타냄. 주지는 위와 같음. (3) 색애주지(色愛住地). 색계의 사혹(思惑). (4) 유애주지(有愛住地). 유는 무색계. 무색계의 사혹. (5) 무명주지(無明住地). 무명은 우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 온갖 번뇌의 근본인 것. 주지는 위와 같음. 『승만경(勝鬘經)』에는 아라한ㆍ벽지불 등은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 함."}}{{sfn|곽철환|2003|loc="[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번뇌.
<br>(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이것은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見一處)라고 함.
1,079번째 줄:
<br>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1255a
<br>Bukkyō daijiten (Oda) 553-1-8*743-2-25"}})는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을 제외한 '''색계의 수혹'''(修惑)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A3%BC%EC%A7%80%EB%B2%88%EB%87%8C&rowno=1 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2013년 5월 3일에 확인|ps=<br>"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無明)의 번뇌를 5종에 나눈 것. (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또는 일체견주지(一切見住地). 견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 이것은 지적(智的)인 미(迷)로서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라 하고, 주지(住地)는 번뇌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의 의지가 되며, 또 번뇌를 내는 것이므로 주지라 함. (2) 애욕주지(愛慾住地). 욕은 욕계(欲界), 애는 탐애(貪愛), 곧 사혹(思惑). 사혹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의 4에 통하거니와 탐애는 다음 생(生)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탐애로써 사혹을 나타냄. 주지는 위와 같음. (3) 색애주지(色愛住地). 색계의 사혹(思惑). (4) 유애주지(有愛住地). 유는 무색계. 무색계의 사혹. (5) 무명주지(無明住地). 무명은 우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 온갖 번뇌의 근본인 것. 주지는 위와 같음. 『승만경(勝鬘經)』에는 아라한ㆍ벽지불 등은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 함."}}{{sfn|곽철환|2003|loc="[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번뇌.
<br>(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이것은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見一處)라고 함.
1,110번째 줄:
<br><sup style="color: blue">29)</sup> 그곳에는 진(瞋)수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진'은 전5식이 감수하는 고수(苦受)에서 수증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고수가 없기 때문에 '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의 상속은 삼매[定]에 의해 윤택해지기 때문이며, 그곳에는 '진'의 이숙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진'은 그 속성상 불선의 악으로 분류되나 상계의 수면번뇌는 악이 아닌 유부무기, 다시 말해 올바른 지혜의 생기를 방해하는 그릇된 의식일 뿐이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5, 앞의 책, p. 138 참조)"}}{{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1078&DTITLE=瞋 瞋]". 2013년 3월 20일에 확인|ps=<br>"瞋:
梵語 pratigha 或 dvesa,巴利語 patigha 或 dosa 。又作瞋恚、瞋怒、恚、怒。音譯作醍鞞沙。心所(心的作用)之名。為三毒之一。係指對有情(生存之物)怨恨之精神作用。於俱舍宗屬不定地法之一,於唯識宗屬煩惱法之一。據俱舍論卷十六、成唯識論卷六所載,對違背己情之有情生起憎恚,使身心熱惱,不得平安之精神作用,名為瞋。又忿、恨、惱、嫉、害等隨煩惱,皆以瞋之部分為體,是為六根本煩惱(或十隨眠)之一。以其不屬推察尋求之性質(見),作用遲鈍,故為五鈍使之一。與貪、癡兩者,共稱為三毒(三不善根)。亦屬五蓋、十惡之一。<br>
瞋唯屬欲界所繫之煩惱,於色界、無色界則無。貪乃從喜愛之對境所起,反之,瞋則從違逆(不順心)之對境所起。瞋,為修學佛道上最大之障害,經論中常誡之,如大智度論卷十四(大二五‧一六七中):「瞋恚其咎最深,三毒之中,無重此者;九十八使中,此為最堅;諸心病中,第一難治。」「無瞋」即對境不起害心,為對治瞋之精神作用,屬俱舍宗十大善地法之一、唯識宗善心所之一,與無貪、無癡共稱三善根,又為四無量心中之慈無量心之體。〔雜阿含經卷二十七、卷二十八、悲華經卷六、大毘婆沙論卷二十七、卷三十四、卷四十四、卷四十八、顯揚聖教論卷一、順正理論卷四十、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十五、俱舍論光記卷十六、成唯識論述記卷六末〕 p6114"}} 이러한 사실은 또한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을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는 즉 [[욕계]]를 떠남[離]으로서 생기[生]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을 느끼는 [[경지]] 또는 [[마음상태]]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sfn|곽철환|2003|loc="[
為三界九地之一。即色界之初禪天。蓋三界共分九地,即欲界一地,色界與無色界各四地;故色界之初禪天即為九地中之第二地。於初禪天,已遠離欲界之欲、惡不善法,而生喜樂,故稱離生喜樂地。雜阿含經卷十七(大二‧一二三上):「謂比丘離欲、離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樂,初禪具足住。」〔集異門論卷五、俱舍論卷十二、俱舍頌疏卷十〕(參閱「九地」132) p6713"}}{{sfn|佛門網|loc="[http://dictionary.buddhistdoor.com/word/72757/%E9%9B%A2%E7%94%9F%E5%96%9C%E6%A8%82 離生喜樂]". 2013년 5월 5일에 확인|ps=<br>"離生喜樂:
<br style="margin-bottom: 10px">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1,191번째 줄:
<br>Bukkyō jiten (Ui) 1036
<br>Bukkyōgo daijiten (Nakamura) 1326c"}})라고도 하는데,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을 제외한 '''무색계의 수혹'''(修惑)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A3%BC%EC%A7%80%EB%B2%88%EB%87%8C&rowno=1 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2013년 5월 3일에 확인|ps=<br>"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無明)의 번뇌를 5종에 나눈 것. (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또는 일체견주지(一切見住地). 견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 이것은 지적(智的)인 미(迷)로서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라 하고, 주지(住地)는 번뇌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의 의지가 되며, 또 번뇌를 내는 것이므로 주지라 함. (2) 애욕주지(愛慾住地). 욕은 욕계(欲界), 애는 탐애(貪愛), 곧 사혹(思惑). 사혹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의 4에 통하거니와 탐애는 다음 생(生)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탐애로써 사혹을 나타냄. 주지는 위와 같음. (3) 색애주지(色愛住地). 색계의 사혹(思惑). (4) 유애주지(有愛住地). 유는 무색계. 무색계의 사혹. (5) 무명주지(無明住地). 무명은 우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 온갖 번뇌의 근본인 것. 주지는 위와 같음. 『승만경(勝鬘經)』에는 아라한ㆍ벽지불 등은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 함."}}{{sfn|곽철환|2003|loc="[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번뇌.
<br>(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이것은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見一處)라고 함.
1,256번째 줄:
<br>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1255a,1379b
<br>Bukkyō daijiten (Oda) 553-1-14*1718-1"}} {{lang|en|[[:en:entrenched nescience|<span style="color: black">entrenched nescience</span>]]}}{{sfn|DDB|loc="[http://www.buddhism-dict.net/cgi-bin/xpr-ddb.pl?q=%E4%BA%94%E4%BD%8F%E5%9C%B0%E6%83%91 五住地惑]". 2013년 5월 3일에 확인}})는, "대체로 말해", [[견혹]]의 성질의 [[무명 (불교)|무명]]을 제외한 [[3계]]의 모든 [[무명]], 즉 [[수혹]](修惑)의 성질의 모든 [[무명]]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A3%BC%EC%A7%80%EB%B2%88%EB%87%8C&rowno=1 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2013년 5월 3일에 확인|ps=<br>"五住地煩惱(오주지번뇌):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無明)의 번뇌를 5종에 나눈 것. (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또는 일체견주지(一切見住地). 견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 이것은 지적(智的)인 미(迷)로서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라 하고, 주지(住地)는 번뇌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의 의지가 되며, 또 번뇌를 내는 것이므로 주지라 함. (2) 애욕주지(愛慾住地). 욕은 욕계(欲界), 애는 탐애(貪愛), 곧 사혹(思惑). 사혹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의 4에 통하거니와 탐애는 다음 생(生)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탐애로써 사혹을 나타냄. 주지는 위와 같음. (3) 색애주지(色愛住地). 색계의 사혹(思惑). (4) 유애주지(有愛住地). 유는 무색계. 무색계의 사혹. (5) 무명주지(無明住地). 무명은 우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 온갖 번뇌의 근본인 것. 주지는 위와 같음. 『승만경(勝鬘經)』에는 아라한ㆍ벽지불 등은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 함."}}{{sfn|곽철환|2003|loc="[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번뇌.
<br>(1)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이것은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見一處)라고 함.
1,306번째 줄:
指天台宗所立三惑中之見、思二惑。見惑即於見道所斷之惑,迷於推度三世道理之煩惱。思惑,新譯修惑,即於思惟道(修道)所斷之惑,迷於現在事境之煩惱。此二者皆迷於界內之事理而招致三界之生死,故稱界內惑。(參閱「三惑」624) p3891"}}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진사혹]](塵沙惑)과 [[무명혹]](無明惑)은 [[3계]]를 [[벗어난]] [[중생|유정]], 특히 [[대승불교]]의 [[3승]]의 교학의 관점에서 [[2승]]의 [[아라한]]과 [[벽지불]]이 가지는 [[번뇌]]라고 하여 '''계외혹'''(界外惑)이라고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A%B3%84%EC%99%B8%ED%98%B9&rowno=1 界外惑(계외혹)]". 2013년 5월 5일에 확인|ps=<br>"界外惑(계외혹):
진사혹(塵沙惑)과 무명혹(無明惑). 이것은 3계(界)에는 물론, 3계 밖에도 있는 번뇌이므로 이같이 말함."}}{{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3785&DTITLE=界外惑 界外惑]". 2013년 5월 5일에 확인|ps=<br>"界外惑:
即天台宗所立三惑中之塵沙、無明二惑。界,指欲界、色界、無色界等三界。迷於三界內外恆沙塵數之法而障於事智,稱為塵沙惑;可以假觀對治之,而令證得道種智,成就解脫之德。迷於中道第一義諦之理而障於理智,稱為無明惑,乃純屬三界外之惑。此惑唯有菩薩能斷除,故又稱別惑;可以中觀對治之,而令證得一切種智,成就法身之德。〔大智度論卷二十七、摩訶止觀卷四上、法華玄義釋籤卷三〕(參閱「三惑」624) p3892"}} 흔히 '''계내혹'''(界內惑)을 '''3계 안의 번뇌'''{{.cw}}'''3계 내의 번뇌''' 또는 '''3계의 번뇌'''라고 하며, '''계외혹'''(界外惑)을 '''3계 밖의 번뇌''' 또는 '''3계 외의 번뇌'''라고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계외혹]] 또는 [[3계 밖의 번뇌]]라고 할 때 그 [[번뇌]]가 실제로 [[3계]] 밖에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다. [[3계]]를 벗어난 곳은 [[열반]]인데 [[열반]]에는 [[번뇌]]가 있을 수 없으므로 실제로 이들 [[번뇌]]가 [[3계]] 밖에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며, '[[3계]]의 [[중생|유정]]에게 인지되는 [[번뇌]]'의 범위를 벗어난 [[번뇌]]라는 의미이다.{{sfn|곽철환|2003|loc="[
어떠한 부류·범주·영역·구역·세계·경지·상태의 바깥."}} 그리고, 특히, [[부파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아라한]]과 [[벽지불]]은 [[3계]]를 벗어나 [[열반]]에 도달한 존재인데, 이에 대하여 [[천태종]]에서는 이들이 도달한 [[열반]]은 실제로는 [[완전한]] [[열반]]이 아닌데 그 이유는 이들이 [[끊지]] 못한 [[진사혹]](塵沙惑)과 [[무명혹]](無明惑)이라고 불리는 [[번뇌]]가 아직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천태종]]에서는 이러한 뜻을 담아 이 두 번뇌를 통칭하여 [[계외혹]]이라고 부른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2100&DTITLE=三惑 三惑]". 2013년 5월 5일에 확인}}{{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3785&DTITLE=界外惑 界外惑]". 2013년 5월 5일에 확인}} 또한, [[천태종]]에서는 [[3혹]] 가운데 [[견사혹]] 즉 [[계내혹]]을 [[성문 (불교)|성문]]{{.cw}}[[연각]]{{.cw}}[[보살]]의 [[3승]]이 함께 끊는 [[번뇌]]라는 뜻에서 '''통혹'''(通惑)이라고도 하며,{{sfn|星雲|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9%80%9A%E6%83%91&rowno=1 通惑(통혹)]". 2013년 5월 5일에 확인|ps=<br>"通惑(통혹):
↔별혹(別惑). 우주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 어리석은 견혹(見惑)과 낱낱 사물의 진상(眞相)을 알지 못하여 어리석은 수혹(修惑). 이 2혹은 성문ㆍ연각ㆍ보살의 3승(乘)에서 공통하게 끊는 것이므로 통혹이라 함."}}{{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7956&DTITLE=通惑 通惑]". 2013년 5월 5일에 확인|ps=<br>"通惑:
1,312번째 줄:
←통혹(通惑). 3혹 가운데서 진사혹(塵沙惑)ㆍ무명혹(無明惑)은 따로 보살만이 끊는 번뇌이므로 별혹이라 함."}}{{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9771&DTITLE=別惑 別惑]". 2013년 5월 5일에 확인|ps=<br>"別惑:
為「通惑」之對稱。指三惑中之塵沙、無明二惑。因係別教菩薩之所當斷,故稱別惑。菩薩教化眾生,須通達如塵如沙、無量無數之法門,然以心性闇昧,不能達此塵沙無數之法門而自在教化,尚有化道障,故稱塵沙惑;又迷於根本理體之惑,而障蔽中道實相之理,故稱無明惑。斷此別惑,則可成佛。〔大智度論卷二十七、法華玄義釋籤卷三下、摩訶止觀卷六〕(參閱「三惑」624) p2801"}}{{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B3%84%ED%98%B9&rowno=1 界外別惑(계외별혹)]". 2013년 5월 5일에 확인|ps=<br>"界外別惑(계외별혹):
계외혹(界外惑)과 같음."}}{{sfn|곽철환|2003|loc="[
천태종에서 설하는 세 가지 번뇌.
<br>(1) 견사혹(見思惑). 이치를 알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견혹(見惑)과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사혹(思惑).
1,384번째 줄:
若論斷位,則別圓二教不同。依別教之說,十信位能伏住見思惑,初住能斷除見惑,七住能斷盡思惑,八、九、十住能斷除界內之塵沙惑,十行斷界外之塵沙惑,十迴向能伏住無明惑,初地以後至妙覺位能斷除十二品之無明惑。依圓教之說,五品弟子位能伏住五住地之煩惱,十信中之初信位能斷除見惑,七信位能斷盡思惑,八、九、十信能斷除界內外之塵沙惑,初住以後至妙覺位能斷除四十二品之無明惑。實則三惑原係一惑之粗細分,惑體無別,其粗者稱為見思,細者稱為無明,介於其間者稱為塵沙,是故,所謂斷捨,當無前後異時之別。又若以三惑對配二障,則見思惑相當於煩惱障,塵沙惑、無明惑相當於所知障。〔摩訶止觀卷四上、卷六上、法華經玄義卷五上、法華玄義釋籤卷三下、卷四下、止觀輔行傳弘決卷六之三、卷七之四、四教義卷一、四念處卷四〕<br>
(二)為三毒之異稱,即貪欲、瞋恚、愚癡等三種根本之迷惑。 p624"}}{{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2%BC%ED%98%B9&rowno=1 三惑(삼혹)]". 2013년 5월 6일에 확인|ps=<br>"三惑(삼혹):
견사혹(見思惑)ㆍ진사혹(塵沙惑)ㆍ무명혹(無明惑). 삼장(三障)이라고도 함. (1) 견사혹.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서 끊는 견혹(見惑)ㆍ수혹(修惑). 견혹은 우주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서 일어나는 번뇌. 수혹은 낱낱 사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여서 일어나는 번뇌. (2) 진사혹. 진사는 많음을 비유한 것.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에 마음이 어둑컴컴하여 무량무수한 법문을 알아 자유자재하게 구제하지 못하는 것을 말함이니, 다만 혹체(惑體)가 수없다는 뜻만이 아니고, 알지 못하는 법문이 많다는 뜻으로 이름한 것이니, 체(體)는 한 열혜(劣慧). (3) 무명혹ㆍ장중도혹(障中道惑)이라고도 하니, 미(迷)의 근본을 이루어 지혜의 밝음이 없는 번뇌. 이 3혹 중 앞의 하나는 성문ㆍ연각ㆍ보살이 함께 끊을 수 있는 것이므로 통혹(通惑)이라 하고, 뒤의 둘은 보살만이 끊는 것이므로 별혹(別惑)이라 한다. 또 앞에 하나는 3계 안의 이(理)ㆍ사(事)를 미(迷)하여 3계의 생사를 받으므로 계내혹(界內惑)이라 하고, 뒤에 둘은 3계 안의 사람은 물론이고, 3계 밖에도 있는 번뇌이므로 계외혹(界外惑)이라 함."}}{{sfn|곽철환|2003|loc="[
천태종에서 설하는 세 가지 번뇌.
<br>(1) 견사혹(見思惑). 이치를 알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견혹(見惑)과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사혹(思惑).
1,598번째 줄:
==참고 문헌==
* {{서적 인용|저자=곽철환|제목=[
* {{서적 인용|제목=[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421&startNum=1 승만경]|저자=구나발타라 한역, 번역자 미상|연도=K.54, T.353|출판사=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id=K.54(6-1361), T.353(12-217)}}
* <span id="CITEREF.EC.84.B8.EC.B9.9C_.EC.A7.80.EC.9D.8C.2C_.ED.98.84.EC.9E.A5_.ED.95.9C.EC.97.AD.2C_.EA.B6.8C.EC.98.A4.EB.AF.BC_.EB.B2.88.EC.97.AD"></span>{{서적 인용|저자=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연도=K.955, T.1558|제목=[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1 아비달마구사론]|출판사=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id=K.955(27-453), T.1558(2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