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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의 대립===
초평 3년([[192년|192]]), [[동탁]]이 [[여포]](呂布)에게 살해된 이후, [[동탁]]의 잔당 [[이각 (후한)|이각]](李傕) 등이 장안에 내습하여 조정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흥평 2년, 마침내 헌제는 [[이각 (후한)|이각]]·[[곽사]](郭汜)에게서 벗어나고자 장안을 탈출하여 낙양으로 향한다. 이때 참모 [[곽도]](郭圖)는 황제를 영입하여 우리들의 세력권 내에 있는 마을로 천도를 해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원소는 [[동탁]]이 임명한 [[헌제]](獻帝)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데다, 황실은 이미 쇠락하여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여겼으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 헌제는 [[조조]]에게 보호받는 처지가 되었는데, 그때까지 평범한 군벌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원소]]계 군벌로까지 분류되던 [[조조]]는 황실의 권위와 명망을 되살려내는 데 성공하며 명분을 얻었고, 그때까지 원소가 누려 왔던 명분적 우위를 뒤집어 버렸다.
 
본디 군웅할거 초반의 [[조조]]는 식견과 안목에 있어서도 별다른 능력을 보이지 못했으며, 원소의 도움을 받고서야 군벌로서 어느 정도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조조]]가 황제를 옹립함으로써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조조]]를 다소 얕보고 있었던 원소는 그제서야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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