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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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년]]([[건안]] 3년), 원소가 대대적으로 침공해왔다. 아들 [[공손속]]을 [[흑산적]]에게 보내 원병을 청하고 공손찬도 직접 돌기(突騎)를 거느리고 출격하여 서산(西山, [[타이항산맥]]) 옆에서 흑산적과 연계해 기동하며 원소의 후방을 유린하려 하였다. [[장사 (관직)|장사]] [[관정 (후한)|관정]]이 간하기를, “지금 불안해하지 않는 장졸이 없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지키며 버티고 있는 것은 그 [[가족]]이 마음에 걸리고 장군을 주인이라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건하게 수비만 해도 원소는 필히 환군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버리신다면 중심이 없어진 역경이 위험해집니다. 장군께선 근거지를 잃고 초야에 외로이 계셔야 할텐데 어떻게 흥기할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그리하여 출정은 철회하였다.
 
[[199년]] 봄, 흑산적 두령 [[장연 (후한 무장)|장연]]이 공손속의 요청에 응해 십만 명으로 공손찬을 구하려 하였다. 공손찬은 공손속에게 ‘[[봉화]]를 올린다면 이쪽에서도 출전해 협공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는데 그 사자 [[문칙]](文則)이 원소의 척후병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밀서를 입수한 원소는 [[복병]]을 숨겨두고 불을 피웠다. 공손찬이 신호대로 출전했다가 대패하고 다시 성으로 쫓겨 들어갔다. 원소는 [[땅굴]]을 파고 들어가 누각 아래에 구멍을 뚫고 [[나무]] [[기둥]]을 댔다. 반 이상에 달했을 때 그 기둥들에 불을 붙임으로써 누각들을 붕괴시켰다.<ref name='손찬이형' /> 원소군은 점차 중앙으로 다가오는데 이를 반전할 마땅한 수는 전혀 없어 누이와 처자를 죽이고 자신은 분신자살하였다. 원소의 병사들이 누대로 올라가 공손찬의 [[목]]을 베었다. 3월의 어느 날이었다.<ref name='바지사장' />
 
== 삼국지연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