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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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에서 출생하였고, [[2006년]] [[8월 23일]] [[경기도]] [[일산신도시|일산]]의 병원에서 [[위암]] 때문에 향년 60세로 사망하였다.
 
박영한은 어머니의 질병과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사글셋방을 전전하며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으며, 고등학교를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공장 및 부두 노동자, 거리의 악사 등을 해야 할 만큼 청년 시절도 어려웠다.<ref name="조선"/> 1970년 군에 입대하고 베트남전쟁에 자원하였다. 귀국 후 1973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1977년 30세에 졸업하였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B0%95%EC%98%81%ED%95%9C&ridx=0&tot=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죽기 6년 전부터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유가족에 따르면 그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문학에 대해 남긴 말은 “문학이 암보다 더욱 고통스럽다”였다.<ref name="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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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장편에서는 우리의 민족 현실에 대한 진지한 소설적 탐구를 하였으며, 《왕룽일가》 이후의 소설에서는 리얼리즘의 독특한 문체로 구체적 일상의 진실을 그려내었다. [[1988년]] 《지옥에서 보낸 한철》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 상훈 ==
* 1978년 「머나먼 쏭바강」으로 제2회 오늘의 작가상
* 1988년 「지옥에서 보낸 한철」로 제19회 동인문학상
* 1988년 「지상의 방 한 칸」으로 제1회 연암문학상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