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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황보숭은 동탁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 동탁은 처음 토벌 명령을 받았을 때 진창을 구원해야 한다고 했으나, 황보숭은 진창을 공격하다 힘이 빠진 적군을 치려 했다. [[189년]] 2월에 왕국이 회군하려 할 때 황보숭이 이들을 공격하려 하자, 동탁은 궁지에 몰린 적을 치는 것이 옳지 않다며 반대했다. 결국 동탁을 후방에 남겨둔 채 반란군을 공격하여 만여 명을 베자, 동탁은 황보숭을 원망하여 둘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한편 한수는 패하고 돌아온 왕국을 죽였으며, 이후 반란군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반란군은 무너지게 되었다.
 
===동탁 집권기===
동탁은 영제가 중앙 관직으로 불러들여도 가지 않았으며, 휘하 병력들을 황보숭에게 넘기라는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황보숭의 조카 황보력(皇甫酈)은 동탁을 제거할 것을 제안했으나, 황보숭은 조정의 명령 없이 죽일 수 없다면서 조정에 보고만 했다. 조정에서는 동탁을 책망했으나, 동탁은 이 역시 무시하고 군사를 거느린 채 주둔하다가 [[하진]](何進)이 [[십상시]]를 제거하기 위해 낙양으로 불러들이자 낙양으로 가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190년]] 동탁은 황보숭을 성문교위(城門校尉)로 임명한다는 구실로 조정으로 불러들여 죽이려 했다. 황보숭의 장사(長史)인 양연(梁衍)은 동탁을 공격할 것을 제안했으며, 당시 [[경조윤(京兆尹)이었던]] [[갑훈]](蓋勳)도 동탁을 토벌하자 했으나 모두 따르지 않고 낙양으로 갔다. 그러나 황보숭의 아들이고 동탁과의 사이가 친형제같았던 황보견수(皇甫堅壽)가 눈물로 호소한 것이 동탁의 마음을 움직여 그대로 조정에서 일하게 되었다.
동탁은 영제가 중앙 관직으로 불러들여도 가지 않았으며, 휘하 병력들을 황보숭에게 넘기라는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황보숭의 조카 황보력(皇甫酈)은 동탁을 제거할 것을 제안했으나, 황보숭은 조정의 명령 없이 죽일 수 없다면서 조정에 보고만 했다. 조정에서는 동탁을 책망했으나, 동탁은 이 역시 무시하고 군사를 거느린 채 주둔하다가 [[하진]](何進)이 [[십상시]]를 제거하기 위해 낙양으로 불러들이자 낙양으로 가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동탁이 [[192년]] [[왕윤]](王允)과 [[여포]](呂布)에게 살해당한 후 거기장군과[[거기장군]]과 [[태상 (太常관직)|태상]] 등을 지냈다.<ref>《[[후한서]]》 〈[[:s:zh:後漢書/卷9|제9권]]〉 “三年[...]夏[...]五月[...]丁未,征西將軍皇甫嵩為車騎將軍。”</ref> 그러나 왕윤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이각 (후한)|이각]](李傕)이 전횡을 일삼는 기간에 병이 들어 죽었다.
[[190년]] 동탁은 황보숭을 성문교위(城門校尉)로 임명한다는 구실로 조정으로 불러들여 죽이려 했다. 황보숭의 장사(長史)인 양연(梁衍)은 동탁을 공격할 것을 제안했으며, 당시 경조윤(京兆尹)이었던 [[갑훈]](蓋勳)도 동탁을 토벌하자 했으나 모두 따르지 않고 낙양으로 갔다. 그러나 황보숭의 아들이고 동탁과의 사이가 친형제같았던 황보견수(皇甫堅壽)가 눈물로 호소한 것이 동탁의 마음을 움직여 그대로 조정에서 일하게 되었다.
 
동탁이 [[192년]] [[왕윤]](王允)과 [[여포]](呂布)에게 살해당한 후 거기장군과 태상(太常) 등을 지냈다.<ref>《[[후한서]]》 〈[[:s:zh:後漢書/卷9|제9권]]〉 “三年[...]夏[...]五月[...]丁未,征西將軍皇甫嵩為車騎將軍。”</ref> 그러나 왕윤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이각 (후한)|이각]](李傕)이 전횡을 일삼는 기간에 병이 들어 죽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