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타 흐루쇼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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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사후, 소련공산당 내에서는 여러 분파들의 권력투쟁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보기관과 공안기관을 장악한 [[라브렌티 베리야|베리야]]가 앞서 있었으나, 스탈린의 심복이었던 그에게 숙청될 것을 두려워 한 흐루쇼프, [[말렌코프]], [[카가노비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몰로토프]], [[불가닌]] 등이 연합하여 베리야를 밀어내고, 구금후 처형하였다.
 
이후 말렌코프가 권력투쟁에서 앞서나가는 듯했으나, 흐루쇼프가 결국 당권을 장악하였다. 흐루쇼프는 이후 소련 정치체제의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였다. 1956년 2월 25일에 열린 제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행한 비밀연설은 그 시발점이었다. 그는 여기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대숙청]] 당시 행한 스탈린의 무자비한 처사와 범죄행위를 고발하고<ref>최종기 저, 《러시아 외교정책》서울대학교출판부(2005) {{ISBN |89-521-0578-8}}</ref> {{rp|40}} 가혹한 중앙집권제를 비판하는데 이르렀다.<ref name="글로벌 사양기"/> 이러한 행위때문에 몰로토프 등 당의 보수파들은 흐루쇼프에 반기를 들었으나 도리어 1957년 흐루쇼프에게 패배하여 "반당그룹"의 오명이 붙은 채 당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스탈린과는 달리 정적을 당에서 축출했을 뿐, 처형이나 고문같은 물리적 탄압은 가하지 않았다.
 
[[1958년]] [[3월]]에는 [[니콜라이 불가닌]]을 밀어내고, 소련 수상에 취임하여 당권뿐만 아니라 정부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개혁 정책은 본격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