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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영]]이 [[대장군]]을 지내던 때에 전분은 제조랑(諸曹郞)이었다. 이때 그는 고귀한 신분이 아니었고, 두영은 전분을 아들처럼 대하였다.
 
[[전한 경제|경제]] 말년에 전분은 신분이 고귀해져 [[광록대부|중대부(中大夫)]]가 되었다. 또 말솜씨가 좋고 《반우》(盤盂)를 비롯한 [[잡가]]의 서적을 읽는데, 효경황후는 전분을 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경제가 죽고 [[전한 무제|무제]]가 즉위하니, 전분은 효경황후가 황태후로 격상되었기 때문에 무안후(武安侯)에 봉해졌다. 전분은 빈객을 모아 무제에게 천거하였다.
회남왕은 기뻐하여 전분에게 재화를 내렸다.
 
두영과 전분은 유학을 좋아하여, 유학자 [[조관 (전한)|조관]]을 [[사공 (관직)|어사대부]]에, [[왕장 (낭중령)|왕장]](王臧)을 [[광록훈|낭중령]]에 임명하였다. 또 [[노군|노나라]]의 [[신배|신공]]을 초빙하여 명당(明堂)을 설치하고 관소를 폐지하여 유학의 예를 따라 복식 제도를 갖추고 [[열후]]를 봉국으로 내보내려 하였다. 이듬해 조관이 황태후에게황태후에게는 상주하지아뢰지 말 것을 권하니, 두태후는노한 노하였고,두패후는 조관 · 왕장 등을왕장을 내쫓고 전분 · 두영을 파면시켰다.
 
===전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