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루이즈 도를레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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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2년]] [[팔레 루아얄]]에서 [[오를레앙 공작]] [[오를레앙 공 필리프 1세|필리프 1세]]와 [[오를레앙 공작 부인 헨리에타 앤|잉글랜드 공주 헨리에타 앤]] 사이의 큰딸로 태어났다. 마리 루이즈는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를 조부모로, [[찰스 1세]]와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를 외조부모로 두었다. 예쁘고 매력적인 마리 루이즈는 필리프 1세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었으며 양가의 할머니에게도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1670년]] 어머니 헨리에타 앤이 죽고 필리프 1세는 [[팔츠의 엘리자베트 샤를로트|팔츠 공녀 리젤로테]]와 재혼했다. 그녀는 마리 루이즈와 동생 안 마리 자매를 친어머니처럼 돌봐주었고, 마리 루이즈는 평생 이 계모와 애정어린 관계를 지속했다.
 
마리 루이즈는 [[1679년]] [[11월 19일]]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와 결혼했다. 카를로스는 아름다운 아내 마리 루이즈에게 흠뻑 빠졌지만 마리 루이즈 본인은 스페인 궁정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왕실에서 바라는 아이까지 태어나지 않아 몹시 불행했다. 스페인 궁정은 프랑스가 그녀를 통해 스페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여겼고, 마리 루이즈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존재였다.<ref name="vg273">비비안 그린, 《권력과 광기》, 말글빛냄, 2005, p.273~p.274, {{ISBN |978-89-955988-3-2}}</ref> 마리 루이즈의 백부 [[루이 14세]]는 조카딸 부부의 사생활에 대해 조사하게 했고, 프랑스 대사 레브넥은 마리 루이즈가 아이를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ref name="vg273"/> 후계자를 낳는 것이 요원해진 마리 루이즈는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을 했고 점차 체중이 불어나 카를로스와의 관계도 멀어졌다.<ref name="vg273"/> 마리 루이즈는 루이 14세에게 독살될까 두렵다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ref name="vg273"/> 그녀는 말을 타다가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스물 일곱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마리 루이즈 사후 그녀의 시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가 마리 루이즈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사이가 가까웠다고 한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