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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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타나는 [[보헤미아]] 북부의 리토미슐에서 1남 17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ref>박종호,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시공사, p.43, 2004</ref>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맥주 양조 기사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이 [[프라하]]에 나가 프록시에게 피아노와 음악 이론을 배웠다. 4세 때 바이올린을, 6세 때 피아노를 연주하여 신동이란 말을 들었다.
 
19세 때 [[프라하]]로 가서 부잣집의 음악 선생을 하며 음악 공부를 하였으며, 프라하를 방문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그와 친분을 맺기도 했다.<ref name="pjy">박준용, 《세상의 모든 클래식》 마고북스, 2004, p.172, {{ISBN |89-90496-15-2}}</ref> 스메타나는 당초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꿈꾸었으나,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민중 사이에 저항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1848년]] [[오스트리아 2월 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도 6월에 혁명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의식에 눈뜬 그는 국민의용군에 가담하여 [[국민의용군 행진곡]] 등을 작곡하였으며, 민족운동에서의 작곡가의 역할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이 시절 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프라하에 음악 학교를 세우고 후배를 양성하였다.
그의 작품은 과도한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고 서정적인 면이 짙었으며, 보헤미안 민족 음악의 시조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