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 14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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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에리크 14세는 [[구스타브 1세 바사]]와 [[작센라우엔부르크의 카타리나]]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라틴어를 유창하게 했고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핀란드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할 줄 알았다.<ref name="vg">비비안 그린, 《권력과 광기》, 말글빛냄, 2005, p.220~221, {{ISBN |978-89-955988-3-2}}</ref> 또한 건축과 기술에 조예가 깊고 예술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어 뛰어난 군주가 될 자질을 보였다. 그러나 에리크 14세는 자신의 왕권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했으며 국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기 위해 스웨덴 왕들 가운데 최초로 '폐하'의 호칭을 강요하기도 했다.<ref name="vg"/> 에리크 14세는 끊임없이 귀족들을 의심하고 경계했으며 피해망상에 시달려 사소한 이유로 귀족들을 가혹하게 처벌했다. 1568년 에리크 14세는 동생 [[요한 3세 (스웨덴)|요한 3세]], [[칼 9세]]에게 축출당해 처자와 함께 유폐되었다. 그가 총애했던 국무대신 요란 페르손(Jöran Persson)은 처형되었고, 에리크 14세 또한 1577년 감옥에서 독살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국왕으로 즉위한 동생이 에리크 14세가 먹을 콩으로 만든 수프에 비소를 넣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공식적으로는 위궤양으로 인한 사망으로 발표되었다. 1958년 에리크 14세의 유해에 의학적인 검사를 실시한 결과, 그의 피부와 뼈, 모발에서 비소가 검출되었다.<ref>시부사와 다쓰히코, 《독약의 세계사》, 오근영 역, 가람기획, 2003, p.70, {{ISBN |89-8435-165-2}}</ref>
 
== 결혼 ==